뭉칫돈 금리 투기 기업·국민 멍든다…이자보장상한제등 대책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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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금융기관이 경쟁적으로 높은 이자를 보장해주는 금융상품을 선보이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터져나오고 있다.

수신금리 경쟁이 금융기관의 수익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를 보전하기 위한 대출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자금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또 정부가 예금인출사태 등을 막기 위해 사실상 전 금융기관의 원리금을 보장해주기로 함에 따라 예금주들은 금융기관의 안정성은 전혀 고려치 않고 단 한푼의 이자라도 더 쳐주는 곳으로 몰리는 등 사실상 '금리 투기' 현상마저 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금리가 사실상 완전 자유화된 데다 이자제한법까지 철폐된 상황에서 돈이 궁한 금융기관들이 마구잡이로 금리를 올릴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고 그런 금융기관들에 문제가 생기면 그 뒤치다꺼리는 결국 정부가 국민세금을 통해 해결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거액예금의 경우 통상 이자를 더 쳐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익부 (富益富) 빈익빈 (貧益貧)'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계에선 정부가 원금은 완전보장하되 이자에 대해서는 예금주의 책임도 일정부분 감안해 상한선을 정하는 등 고금리 폐해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 고금리 실태 = 은행권은 1개월짜리 초단기 예금에도 10% 이상의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일부 은행들은 콜자금 (단기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연 20% 이상 이자를 지급하는 확정금리 예금상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또 일부 업무정지 종금사에서는 예금인출이 시작된 후 연 25~27%의 금리를 보장하면서 예금 재예치에 나섰고, 투신사와 증권사도 연 25% 이상의 고금리를 제시하며 종금사에서 인출된 예금과 은행의 저축성 예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5일 현재 서울과 지방의 8개 투신사와 23개 투자운용회사의 수탁액은 지난해말에 비해 6조7천2백억원이 증가했다.

반면 은행권의 저축성 예금은 올들어 급감하는 추세다.

후발 A은행의 경우 1천8백37억원, 시중은행인 B은행은 9백46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한 은행관계자는 "이달초 업무정지된 종금사의 예금지급이 시작된 후 원리금 보장에 대한 예금자들의 불안심리가 사라져 금융기관 부실도에 관계없이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금융기관으로 자금이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고 말했다.

금융계는 이같이 고소득자들이 위험부담 (리스크) 없이 금리투기에 나서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예금자 보호를 악용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돈 있는 사람들이 거액을 고금리 상품에 굴려 얻은 이자소득까지 서민들이 세금으로 물어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며 "이자소득의 보호는 적정선의 금리로 한도를 정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문제점 = 금융기관간의 무리한 수신금리 경쟁은 기업 및 가계대출자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수신금리를 높게 쳐주면 역금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출금리는 그보다 더 높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 및 보험권에서는 20% 이상의 고금리로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우대금리 (프라임레이트) 를 이미 3%포인트 가량 인상하는 등 대출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또 이같은 출혈경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가속돼 자금공급 기능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장기.저금리 고유계정에서 단기.고금리 신탁 및 실적배당상품으로 자금이 급속 이동함에 따라 은행의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금리 상품경쟁을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대책 = 현재의 경쟁적인 금리인상은 자칫하면 금융권의 공멸 (共滅) 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선 금융기관들이 자체협약 등을 통해 이를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이와 함께 정부가 금융권 예금에 대해 원리금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비상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배제를 분명히 하는 등 '일정한 선' 을 그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원금은 물론 완전보장하되 이자에 대해서는 예금자의 책임도 일정부분 감안해 예컨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약간을 덧붙인 정도까지만 보장한다거나 ▶보장 이자의 금액한도를 정해 특히 고액예금주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만 하다는것이다.

박의준·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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