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세계의 조류]8.끝 패권노리는 중국(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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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12월 한.중.일 정상이 특별초청된 가운데 열린 동남아국가연합 (ASEAN) 정상회담 참석자들은 과거와 다른 두 가지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이들은 껄끄러운 관계였던 중국과 ASEAN간 상호협력이 유달리 강조된 회담분위기를 특색으로 꼽았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중국은 어려움에 처한 ASEAN을 토닥거리고 격려하는 맏형처럼 보였으며 그런 지위에 걸맞게 매사에 적극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인상을 받았다" 고 평가했다.

이같은 중국의 태도변화는 아시아 세력판도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둘러싸고 소원해진 미국과 동아시아국가간의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중국은 우선 미국의 '불온한 목적' 을 강조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최근 관영 인민일보를 통해 "이들 국가가 국제통화기금 (IMF) 이 제공한 '쓴 약' 을 받아 먹는 대가로 어쩔 수 없이 시장을 열고 있지만 미국에 대한 전통적 신뢰에는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 지적했다.

적어도 미국의 속셈은 시장개방 등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에 이른바 '아시아 길들이기' 라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7월 외환위기에 처한 태국에 10억달러를 긴급지원한 데 이어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도 최근 활발히 강구하는 등 아시아 구원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번 ASEAN정상회담을 통해 ASEAN과 '선린.신뢰적 동반자관계' 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력을 앞세워 영토분쟁을 해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점도 힘주어 강조, 이 지역의 전통적인 대중국 경계심을 무마하려 하고 있다.

일본과도 댜오위다오 (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영토분쟁, 미.일 신방위지침 (가이드라인) 등 껄끄러운 문제는 일단 덮어두고 양국간 협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요컨대 아시아 금융위기는 중국에 '도전이면서도 기회' 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아시아권에서 지위와 영향력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정치.경제문제가 당장 처리해야 할 '발등의 불' 이며 중국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경계심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도부 내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아직도 내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내 해결을 천명한 국유기업개혁의 원년 (元年) 을 맞아 적자투성이의 국유기업에 메스를 들이대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국유기업개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물가를 3% 이내로 억제하면서 8~9%의 고도성장을 유지하는 '안정 속의 성장 (穩中求進)' 을 일궈내는 일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오랜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문화혁명 등 험난한 늪을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저력이 현재의 '중국적 자신감' 을 설명하는 담론 (譚論) 이 되고 있다.

베이징 = 문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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