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상시엔 국회 열어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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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급박한 경제위기 속에 정부.기업.노동계 할 것 없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으나 유독 태평스럽고 둔감한 곳이 국회다.

국회는 외환위기가 아무리 긴박해도, 기업이 무더기로 도산해도, 정리해고로 긴장이 고조돼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개혁의지를 아직도 의심하면서 투자를 꺼리는 해외 분위기를 볼 때 개혁을 입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회가 이래서는 안된다.

당장 금융기관만의 정리해고제라도 도입하기 위해 오는 15일 임시국회가 예정돼 있지만 여야간에는 특별법을 만들지, 노동법 개정을 할지조차 합의가 안돼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런 비상시기엔 국회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옳다.

그때그때 여야가 접촉해 국회소집에 합의하고 3일간의 공고기간을 거쳐 국회를 여는 통상적인 방식은 이런 비상시기엔 적합하지 않다.

가령 뉴욕 월가 (街) 의 협상에서 국회동의가 필요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 금융기관이나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입법 필요성이 급하게 제기될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긴박한 이런 상황에 대처하자면 국회가 늘 열려 있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실제 그런 구체적인 법안이 없더라도 국회는 국회 나름대로 위기상황을 점검하고 국정을 살피는 상시적 (常時的) 기능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당장 외환위기문제는 차기대통령과 재경원이 중심이 돼 대처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권교체기에 표류하는 일반국정을 챙기는 일도 급하다.

현 정부는 무력하고 차기대통령측은 아직 법적인 책임을 진 상태가 아니다.

유일하게 국회가 챙길 기능과 권한을 갖고 있다.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잇따른 일탈 (逸脫) 행위, 새 정부 출범에 앞선 광범한 제도개혁론 등 국회가 다룰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방자치관련법의 정비와 개정문제도 늦출 수 없는 큰 현안이다.

국회는 고작 사흘간의 1월국회를 한 후 다시 2월에나 국회를 열자는 한가한 태도를 버리고 1월국회의 회기를 연장해 상시 개회 태세를 유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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