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반증인가, 방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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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까마귀는 검다’란 주장이 틀렸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선 검지 않은 까마귀를 찾아야 한다. 흰 까마귀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은 이 가설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때 흰 까마귀는 ‘반증’ 자료일까, ‘방증’ 자료일까.

두 단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사람이 많지만 이 경우엔 ‘반증’이란 말이 어울린다. ‘반증(反證)’은 어떤 사실·주장이 옳지 않음을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하는 것이고, ‘방증(傍證)’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아니지만 주변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문맥에 따라 구별해야 함에도 ‘방증’을 써야 할 곳에 ‘반증’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많다. “소크라테스가 대화(對話)를 교수법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얻는 방법에 비중을 뒀음을 반증한다” “그 상표의 모조품이 많다는 건 그들 제품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반증한다”처럼 써서는 안 된다. ‘방증’이라 해야 뜻이 통한다.

둘 다 증거를 들어 밝히는 일과 관련 있지만 ‘방증’이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적 증거라면 ‘반증’은 그렇지 않음을 단정하는 반대되는 증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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