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국가부도 임박]지불유예설 배경(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해 7월 시작된 동남아 금융위기가 동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 위기의 진원지였던 태국.인도네시아를 다시 강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부도사태가 임박했다는 소문에 따라 국제통화기금 (IMF) 과 미국.일본 등이 긴급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까지 통화가치와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동남아국가들에 투자했거나 돈을 빌려준 국내 기업.금융기관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6개월만에 다시 증폭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파장을 집중 분석한다.

인도네시아의 모라토리엄 (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점차 우세해지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위기는 지난 6일 발표된 인도네시아의 새해 예산안이 IMF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급속하게 확대됐다.

즉 국내총생산 (GDP) 대비 1%의 흑자목표를 깬 것이다.

그 뒤 IMF가 지원을 철회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루피아화는 날마다 10% 이상 폭락을 거듭하며 지난 8일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달러당 1만선마저 넘어섰다.

루피아화는 현재 자카르타를 뺀 다른 지역의 외환시장에서 사실상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스위스계 UBS은행의 외환전문가인 폴 램버트는 "루피아는 이제 완전히 신뢰를 상실했다" 고 말했다.

자카르타의 한 외환딜러는 8일 "인도네시아 경제가 '돌아올 수 없는 길' 로 가고 있다" 고 개탄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 사태를 계기로 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이 또 다시 통화가치.주가의 동반폭락 사태를 빚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싱가포르 증시가 연초 1주일간 16.9%나 떨어져 아시아증시 가운데 가장 큰 하락세를 보임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도 8일 1.3% 떨어졌으며 파리.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증시들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아시아 전역은 물론 세계경제 전체에 커다란 충격파가 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메릴린치증권의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해외에서 단기로 돈을 많이 빌려 쓴 한국.태국 등은 물론 아시아, 나아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 이라고 말했다.

유럽계은행의 고위관계자는 대 (對) 인도네시아 대출금이 많은 외국은행들이 한국.태국 등 다른 아시아국가들에도 많은 자금을 대출해 준 사실을 지적했다.

지난 82년 멕시코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때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많은 중남미국가들이 대출금 만기연장 및 신규자금 조달 길이 막혀 중남미 전체가 부도사태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전례가 있다.

또한 아시아지역에 대한 대출규모가 1천2백38억달러에 이르는 일본도 인도네시아.태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기관들의 잇따른 도산으로 금융시장이 취약해진 일본경제가 충격받게 된다면 이번 사태는 전세계 금융공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8일밤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과 긴급 전화통화를 갖고 인도네시아가 IMF와 합의한 경제개혁조치를 철저히 이행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IMF측도 경제개혁 프로그램 실행을 가속화할 방침을 밝히는 한편 이날 특별실사단을 급파했고 미셸 캉드쉬 총재도 자카르타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시아경제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김원배 기자

<인도네시아 경제위기 일지>

▶8월14일 변동환율제 채택 발표

▶8월19일 달러당 3천루피아 선 붕괴

▶8월21일 국내 관급 공사대금 2억루피아 지불 중단

▶10월8일 IMF에 지원 요청

▶10월31일 IMF, 2백30억달러 지원결정

▶11월1일 16개 부실 은행 강제 폐쇄

▶98년 1월6일 IMF 지원조건에 어긋나는 예산안 발표

▶1월8일 달러당 1만루피아 선 붕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