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하 우리풍물]1.화개장터…동·서 하나되는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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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 (洗耳菴) 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 의 이름이 높았고 경상.전라 양도 접경이 한 두군데일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 를 두고 일렀다.

' - 김동리의 '역마' (驛馬) 중에서 - 무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대선으로 진정한 의미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는 그 어느때보다 동.서간 깊은 골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영.호남 화합' 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가에 위치한 화개 (경남하동군화개면)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곳이다.

지리산에서 불어온 맵싸한 겨울 바람이 쌍계사를 돌아 섬진강으로 들어가기전 화개에서 한바탕 회오리친다.

산자락에 둘러앉아 외진 곳에 위치한 화개는 예전부터 '장터' 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한창 때는 인근 12개 고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마을 전체가 북적거렸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두릅.고사리등 산나물은 물론 참나무를 베어 만든 숯이 화갯골에서 내려왔다.

그런가 하면 전라도 구례에서는 실.바늘.면경.피륙등이 넘어왔고, 하동에서는 김.미역.소금등 건어물이 섬진강 뱃길을 따라 올라왔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 음력 1.6일에는 주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국내 5개장중 하나로 손꼽혔다.

장터에서 만난 김언주할아버지 (74.경남하동군화개면탑리) 는 “30년전만 해도 장날이면 남사당.여사당.풍각패등이 몰려와 마을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 며 “애들은 사람에 밟힐까봐 아예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못했다” 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만큼 화개는 전라.경상도 사람들이 몰려와 물건과 함께 정을 주고 받았던 곳이다.

화개에서 60평생을 살아온 박영선씨는 “깊게 패였다는 영.호남의 골은 다른 곳의 얘기고 여기서는 윗마을 구례사람과 아래고을 하동사람간에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고 강조한다.

10년전만 해도 화개장이 서는 날이면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 덕분에 인근 마을은 물론 외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서나 물건구하기가 쉬워져 옛 명성을 잃었다.

장날이라도 한산하다.

그래도 고로쇠물을 마시려는 외지 사람들이 몰리는 경칩 때가 되면 어느 정도 장분위기가 되살아난다.

주막집 옥화의 아들 성기가 엿판을 둘러메고 체장수 영감의 딸인 계연을 찾아 떠나는 '역마' 의 장면이 섬진강 건너편 버드나무의 을씨년스러운 풍광과 함께 오버랩되는 곳 화개. 하동군에서는 화개면사무소앞 넓은 공터에다 화개장의 옛 모습을 재현할 계획이다.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은 이 추운 겨울, 다시 화개장이 흥청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그날이 오면 한많고 멋들어진 진양조의 육자배기 가락에 30여년간 깊게 패였던 영.호남의 골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화개 =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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