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방음벽 세워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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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철도에서 불과 50여m 떨어진 청원군 강외면 연제2리 마을을 고속철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청원=안남영 기자

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2리의 오인균(69)씨는 대전에 사는 손자가 보고싶어도 아들에게 더이상 "다녀가라" 소리를 할수가 없게 됐다. 집과 불과 50여m 떨어진 곳에서 수시로 통과하는 고속열차 소음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모처럼 놀러온 2살배기 손자가 갑자기 들려온 고속철 굉음에 놀라 몸을 떠는 등 경기(驚起)를 일으켜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았던 것이다.

고속철도가 통과하는 충북 청원군 강외.강내.부용면의 선로변 주민들이 소음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방음벽이 불충분하거나 불합리하게 설치됐기 때문이다.

고속열차는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평일의 경우 하루 상.하행 모두 128편이 운행돼 평균 8.4분당 1대가 통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지난 4월 개통 이후 시범운행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음에 따른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강외면 상봉2리의 한인동(72)씨는 "1달 전 기르던 암소가 한밤중에 터널을 막 빠져나오는 열차 소음에 놀라 유산을 하는 바람에 팔아치웠다"며 "방음벽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봉2리 부엉골마을은 터널에서 직선거리로 100m이상 떨어져 있으나 지형상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소음이 퍼지지 않고 마을로 고스란히 전달되는데도 방음벽이 설치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로에서 100여m 거리에 사는 오은교(67)씨는 고속철 운행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3차례 소가 유산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철도청 오송관리사업소의 손영득씨는 이에 대해 "건설 당시 환경영향평가 후 소음허용기준치 이하라서 설치가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제2리의 경우 방음벽이 일부 구간에만 설치돼 있어 오인균씨처럼 방음벽이 없는 구간 근처의 주민들은 대책없이 소음에 노출돼 있다.

부용면 문곡리 문곡터널 주변, 강외면 오송4구에도 방음벽이 아예 없거나 충분하게 설치되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또 선로와 인접한 강내면 궁현리의 공장에는 설치돼 있는 방음벽이 비슷한 거리의 강내면 태성리 공장에는 설치가 안 됐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충청지역본부 안병삼 차장은 "본사에서 전구간에 대해 소음진동에 대한 실태조사 용역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과가 나오면 후속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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