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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허를 찌른 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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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제10보 (171~196)]
黑.조한승 7단 白.안조영 8단

피 말리는 반집 다툼 속에서 백이 간발의 차로 앞서나가고 있다. 창문의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한줄기 새어 들어와 판 위에 선을 그었다. 초읽기에 몰린 채 수읽기에 골몰해있던 안조영이 눈이 부신 듯 고개를 든다.

"하나, 둘, 셋…일곱." 프로지망생인 소녀 계시원의 초 읽는 소리가 다시 대국장의 정적을 깨뜨리고 안8단은 쫓기듯 178에 꼬부린다. A로 받아주면 백의 다음 수는 B의 중앙 막기. 감각파답게 그건 안 된다고 직감한 조한승은 서둘러 중앙의 179에 단수한다. 순간 180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좋은 맥점! 안조영은 다급한 와중에도 소매 속에 이처럼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두고 있었다.

조한승의 잘생긴 얼굴에 자조의 빛이 어리고 있다. 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단수조차 받지 않고 직행할 줄은 몰랐다. '참고도1'은 촉촉수다. '참고도2'도 B로 움직이는 수가 있어 넉점이 살아가지 못한다. 결국 181로 후퇴한 뒤 우두둑 중앙을 따냈지만 이 거래에서 한집 정도 손해봤다. 지금 형세에선 생사를 가르는 한집이다.

집념이란 묘하다. 마음을 비운다고들 말하지만 끝없이 몰입하고 열망하면 무언가 이뤄진다. 오늘은 피를 토하는 듯한 안조영의 집념이 승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191이 최후의 패착이 됐다. 194쪽을 먼저 선수해야 했으나 오늘따라 조한승의 수는 간발의 차이로 빗나가고 있다. 담백한 성품의 조7단은 패배를 자인하고 몇수 더 두다가 돌을 던져버렸다. 끝까지 둔다면 차이는 3집반 정도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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