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韓銀의 능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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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33면

콘티넨털 일리노이 내셔널 뱅크. 25년 전 사라진 은행이다. 예금 규모로는 한때 미국에서 7위의 대형은행이었다. 파산 당시 이 은행 예금의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들어온 돈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금융회사들이 전주(錢主)였다. 따라서 그 돈을 돌려주지 못하면 미국뿐 아니라 유럽·일본의 금융시장도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먼저 나선 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였다. 이 은행의 부실상태를 파악해오던 FRB는 표 안 나게 처리할 방법을 찾았다. 다른 상업은행들에 자금을 지원해주라고 요청한 것이다. 물밑 교섭 결과 28개 은행이 공동으로 콘티넨털 일리노이에 55억 달러 한도 안에서 융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콘티넨털 일리노이는 쓰러지고 만다. 파산 직후 FRB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콘티넨털 일리노이가 얼마만큼의 자금을 필요로 하건, FRB는 충분히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최종 대부자’로서 돈을 풀어서라도 막아주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실제로 두 달간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대줬다. 물론 마지막 카드는 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한 국유화였다.

금융시장의 불길을 잡는 데 중앙은행이 소방수로 앞장선 선례는 적잖다. 1973~74년 영국에서 일어난 중소 금융회사들의 부실사태에도 잉글랜드은행은 기민하게 맞섰다. 그때도 지금처럼 부동산 붐에 편승한 대출 경쟁이 화근이었다. 잉글랜드은행은 5년간 모두 30억 파운드를 부실 금융사들에 빌려줬다. 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한 특별융자인 셈이다. 결국 잉글랜드은행은 1억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다. 그래도 예금자들이 돈을 떼이거나, 금융시장의 패닉이 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중앙은행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요즘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진국의 중앙은행들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개별 사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엔 방관하는 듯하지만 은행들의 경영상태를 잘 꿰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은행 경영에 대한 정보와 은행 지원을 위한 돈이 한 세트로 붙어 다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들의 경영정보는 금융감독원이 가장 잘 안다. 검사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은행도 공동검사권이란 게 있다. 한은도 마음 먹으면 못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23일 국회에 출석한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 ‘한은이 왜 은행의 경영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다. “(금감원이) 자료를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의원은 질타했다. “아니, 주지 말란다고 그냥 와요?”
함께 출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금감위원장 시절의 경험을 털어놨다. “직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정보를 주지 않겠다며 벽을 쌓는 금감원, 그런 일을 당했다고 구차하게 변명하는 한은, 현실을 모르고 목청 높이는 국회. 이게 다 한국 금융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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