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플러스] 생색만 낸 차보험 약관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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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6일 현행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중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대폭 강화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을 따져보니 실속은 없고 오히려 보험사에 유리하게 개정된 부분도 있다는 게 소비자단체의 지적이다.

사고로 노동능력을 잃었을 때 지금까지는 실제 소득이 줄어야만 보상금을 지급했으나 이를 소득 감소여부와 관계없이 보상금을 지급토록 한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30년 전부터 이를 적용해왔다.

금감원은 또 후유장애에 대한 위자료를 두배로 올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크게 다친 사람에 한해 위자료를 올려주는데다 가족에게 주던 위자료를 없애는 바람에 손해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교통사고로 노동능력이 절반 이상 줄어들 정도로 크게 다치는 사람이 전체의 30%에 못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약관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개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교통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있었던 증상(기왕증)이 사고로 악화됐을 경우 악화된 만큼만 보상한다는 문구가 약관에 포함됐다. 이는 기왕증이 있었는지 모호한 환자에게도 보험사가 보상금을 깎자고 나올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상이 지연될 경우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약관상 보상액의 50%를 선지급토록 한 가지급금도 보험사에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을 경우 주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 역시 '객관적으로 명백하게'라는 기준이 모호해 보험사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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