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환관리법 폐지추진 왜하나…신용회복위한 고육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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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외국환관리법 폐지를 검토하는 것은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다.

돈을 빌려주는 쪽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는 난국을 타개할 묘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외국환관리법 폐지는 지난해말 대선직후 데이비드 립튼 미국 재무차관이 방한했을 때 여당인 국민회의에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미국정부는 자국 민간금융기관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합의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국의 요구인 만큼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선 듯하다.

하지만 외국환관리법을 일시에 폐지할 경우 자본의 유출입이 빈번해지고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등 엄청난 부작용이 우려된다.

재정경제원 고위관계자는 6일 "외국환관리법의 폐지는 개헌 (改憲)에 버금가는 엄청난 파장이 있다" 고까지 표현했다.

외국환관리법은 외국인 규제와 내국인 규제의 두가지로 크게 나뉜다.

당연히 외국에서 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외국인 규제다.

예컨대 국내진출 외국금융기관은 이 법에 의해 엄중 감시를 받는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취득한 소득이나 자본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하고 국내 부동산 취득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국내에서 증권을 발행할 수도 없다.

국내현지법인의 설립을 금지하는 규정도 이 법에 들어있다.

외국환관리법이 폐지되면 이런 규제가 모두 풀린다.

재경원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해외단기투기자금 (핫머니) 의 빈번한 유출입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지만 외국인 규제는 대부분 풀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밝혔다.

내국인 규제는 다시 ▶해외에서 달러를 빌릴 때의 규제 ▶국내재산을 해외로 내보낼 때의 규제로 크게 나뉜다.

이중 해외에서 달러를 빌릴 때의 규제는 이미 대부분 풀렸다.

예컨대 국내기업의 해외증권 발행이나 상업차관.현금차관, 수출선수금.수출착수금 등도 거의 자유화됐다.

문제는 국내재산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다.

외국환관리법은 내국인의 해외송금을 월5천달러, 연1만달러로 묶는 등 각종 재산유출에 엄격히 한도를 두고 있다.

해외부동산 취득도 그동안 법인의 업무용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지만 이를 폐지할 경우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사태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

멕시코 외환위기 때도 부유층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 큰 문제가 됐었다.

이에 대해 비대위는 외국환관리법을 폐지하더라도 재산도피나 자금세탁 등의 불법적인 해외유출을 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경원 관계자는 "외국환관리법을 폐지할 경우 현실적으로 해외 재산도피를 막을 방법이 없다" 고 우려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외국환관리법이 예정대로 폐지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 실무진에서는 외국환관리법의 폐지보다 대폭 완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폐지할 수밖에 없다면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통제하는 규정을 다른 관계법안에라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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