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대사 정인용은 누구인가…70년대 외화조달의 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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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70년대 외화조달의 명수가 돌아왔다.

5공말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끝으로 관계를 떠났던 정인용 (鄭寅用.64) 씨. 지난해말 김기환 (金基桓) 씨와 함께 급전조달의 특명을 띤 순회대사로 미국과 일본을 다녀온 그는 신년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3일, 국제금융대사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물 간 인물' 로 치부되던 鄭씨가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외화조달에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 그는 60년대 10년간을 꼬박 옛 재무부 외환국에서 실무를 쌓은 뒤 70년대에도 외환국장.국제금융국장을 거쳐 국제금융담당 차관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외환.국제금융 분야의 외길을 걸었다.

특히 지난 74년 1차 오일쇼크 이후의 외환위기 때는 직접 국제금융시장에 나가 단기자금을 끌어와 국가부도를 넘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때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선 그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I.Y.정'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명도를 쌓았다.

여기다 5공 때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후 아시아개발은행 (ADB) 부총재로 5년을 보냈고 그후에도 홍콩의 국제증권회사 고문으로 일한 바 있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인맥과 실전경험이란 면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사람을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측에서도 그의 이같은 능력과 경력을 높이 사고 있다.

金당선자는 이번 현지 실태파악 후에도 그에게 국제금융대사직을 그대로 맡기는 것은 물론 아예 뉴욕에 상주시켜 국제금융시장과 정부를 연결하는 창구역으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鄭씨를 신정부에 중용하기에는 '과거 성분' 상 껄끄러운 점이 많다.

5공의 경제총수를 지낸데다 관치금융의 결정판인 부실기업 정리의 주역이었으며, 사실상 도피성 외유를 나가 거의 자청으로 ADB부총재를 맡을 때도 "부총리를 지낸 사람이 국장급이 갈 자리에 앉아 나라망신을 시킨다" 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위기 앞에 과거의 출신성분을 따질 여유가 없다' 는 金당선자측의 판단으로 鄭씨는 실업자 신세에서 국제금융대사에다 한국은행 고문.외환은행 고문.은행연합회 고문 등 네 가지 감투를 한꺼번에 쓰게 됐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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