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반 집 체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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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2국>
○·쿵제 7단 ●·저우루이양 5단

제9보(120~137)=반 집으로 지고 나면 후유증이 몇 배 심하다. 초읽기에 몰려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반 집 패를 확인했을 때 느끼는 허망함. 등줄기를 타고 전류처럼 흐르는 통증. 이게 몇 날 며칠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반 집 승부가 되면 바둑이 싫어진다”고 말하는 프로도 있다. 하지만 반 집 승부를 즐기는 쪽도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의 세계는 또 다른 묘미가 있고 그래서 얻는 승리의 기쁨은 KO승보다 짜릿할 때가 있는 것.

요는 체질이다. 반 집의 스트레스를 고통으로 생각하느냐, 즐기느냐. 아무리 봐도 지금의 쿵제와 저우루이양은 ‘즐기는 쪽’으로 보인다. 우선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중에서도 쿵제는 더하다. 120의 후수 지킴, 124의 한 칸 뜀은 마치 정수로 두어진다면 그건 운명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그 사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하얗게 내렸던 중앙은 흑 천지로 바뀌고 있다. 백△ 한 점도 잡히고 보니 공연히 보태준 꼴이 됐다. 133도 컸다. 젊은 구경꾼들 사이에선 드디어 흑 승을 점치는 소리가 높아졌다.

▷흑 집=우상 21집. 하변 12집. 좌상 27집. 중앙 5집. 합계 65집. ▷백 집=우하 35집. 좌하 4집. 상변 13집. 덤 6집 반. 합계 58집 반.

대충 집을 세면 6, 7집의 대차다. 그러나 백엔 A의 2집에 B 쪽의 엷음을 노리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흑은 최하 2, 3집 남는다. 반 집 승부였지만 중앙이 흑 천지로 돌변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그러나 쿵제는 서두르지 않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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