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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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으로, 그 가운데 최근 2억 년의 지구 역사는 그 이전의 것에 비해 우리가 상당히 잘 알고 있다. 지구의 역사가 바다에 잘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진다. 바닷속 땅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도는 것처럼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맨틀(지각과 중심핵의 중간부)을 따라 돌고 그 과정에서 없어지고 만들어진다. 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육지는 맨틀 위에 둥둥 떠 있기 때문에 맨틀을 따라 순환되지 않고 지구 표면에 오래 남아있다.

그래서 육지에는 30억 년 이상이 된 암석이 존재하지만 바다에는 2억 년이 넘는 암석이 없다. 바다에서 일어난 현상을 잘 관찰해 지난 2억 년 동안의 지구 변화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45억 년 동안의 전 지구 역사를 유추하는 것이 내가 바다에 가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구와 유사한 행성들과 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진화해 왔는지를 밝히는 것도 나의 관심사다.

인간의 위대한 능력 중 하나는 자신보다도 아주 크거나 작고, 또 자기가 경험한 삶보다도 아주 길거나 짧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은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을 바탕으로 해 쌓인 것이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우리는 아주 작은 원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허블 망원경이 전하는 영상자료로부터 우주의 신비로운 현상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맨틀 위로 지각이 움직이는 속도는 1년에 불과 수㎝인데 이는 겨우 손톱이 자라나는 속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람이 2억 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태평양을 가로지르고도 남을 거리가 된다는 것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실제 모든 바다는 이처럼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지난 2억 년 동안 움직여 왔다. 그러나 2억 년은 지구 나이 전체의 불과 5%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우리는 과학이 가져다준 당장 눈에 보이는 문명의 이기만을 바라볼 뿐, 과학이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부단한 관찰과 실험에 의해 탄생된 결과라는 사실을 가끔 망각한다. 인간이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 눈과 귀를 통해 관찰한 현상을 머리가 논리적으로 사고해 끼워 맞춘 결과이고, 그것은 과학적·합리적 접근방식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보편적인 지식체계가 곧 과학이며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면 한낱 개개인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통사고로 몸이 휠체어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나는 오늘도 바다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나머지 95%의 시간 동안 지구에서 벌어졌을 일들에 대해 상상해 본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