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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취미 요런 재미] 노정현씨의 ‘천연 염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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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에 매료된 사람들은 “색이 서로 잘 어울리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에서 추출한 재료를 써 건강에도 좋다.

옛 색의 ‘고운 빛깔’에 흠뻑 빠진 사람을 만났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노정현(53·여)씨는 결혼 후 25년을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남편·딸·시부모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그런 노씨에게 갑자기 여유가 찾아왔다. 딸이 대학에 진학했고, 시부모가 외국에 있는 형제 집으로 떠났다. 노씨는 2005년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학과에 등록했다. ‘옷 짓는 법, 조각보 만드는 법 등 기술이나 배워서 늙어 소일거리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온라인 수업으로 시작해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대구에서 서울에 있는 원광대 평생교육원으로 매주 한 번씩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평생교육원에서 ‘천연 염색’ ‘규방 공예’ 지도자 과정을 연수하고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3년 만에 학사학위도 땄다. 그리고 바로 석사과정으로 들어갔다.

“인생을 50세까지 살면서 가족을 위해 나는 죽이고 살았는데, 실은 마음에 하고 싶었던 열정이 매우 많았던 것 같아요. 봇물 터지듯 제가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한국 복식 중 노씨가 가장 열광했던 것이 바로 ‘천연 염색’이다. 전통 복식을 재현하다 보니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었다. 노씨는 “이 기간 동안 내가 색에 미쳤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색이 실제로 나오는 걸 보니 행복했다. 색을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재료에서 나오는 색이 확 달라졌다. 곱고 투명한 천연색을 보니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보와 스카프를 만들었다. 어떤 색을 조합해도 서로 잘 어울렸다. 한복도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바느질을 제일 싫어한 노씨였다.

건강에 좋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아토피가 있는 남편의 내복에 쪽으로 천연 염색을 했다. 남편이 즐거워했다. 천연 염색한 조각보·스카프를 주위 사람에게 선물했다. 주변이 화목해졌다. 그는 “내 손으로 색을 만들고, 염색한 걸 좋아해 주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천연 염색한 천으로 만든 조각보 전시를 지인들과 네 차례 열었다. 7일 한국복식과학재단 주최로 연 전시회에서 전통 복식을 응용한 옷 두 벌을 전시하기도 했다. 노씨는 “앞으로 천연 염색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니 ‘업’으로 삼고 매장을 열라는 주변의 권유도 많았다. 노씨는 “가게를 열지 않아도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직접 천연 염색한 조각보로 집의 커튼·테이블보를 만들어야 한단다. 딸이 결혼할 때 옷도 지어줘야 하고, 주변 사람에게 옷을 지어 선물하고 싶단다.

“5년 동안 정신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염색하고 조각보와 옷도 만들었어요. 이걸 이용해 이젠 좀 차분히 내 평생을 즐겨도 될 것 같아요.”

노씨가 그리는 노후는 단순하다. 남편과 천연 염색한 옷을 지어 입고 차 마시며 도란도란 편하게 사는 삶이다.



‘하늘물빛’ 염색 공방 가보니

나무껍질·풀·꽃·열매서 색 추출
“쪽과 홍화 잘 다룰 줄 알면 하산”

16일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의 전통 천연 염색 연구소 ‘하늘물빛’ 염색 공방. 종이컵이 놓인 탁자에 수강생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손마다 노란색의 명주 천 조각을 들고서다.

“이제 염색된 천을 각 종이컵에 담가 보세요.”

홍루까 대표의 말에 수강생들은 천을 종이컵에 담갔다. 그러자 각각의 노랑 천이 연노랑, 붉은 노랑, 황갈색으로 변했다. “와” 수강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홍 대표는 “천과 염료의 결합을 도와주는 매염제에 따라 천연 염료로 염색된 천의 색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전통 천연 염색은 자연에서 채취한 나무껍질·풀·꽃·열매·흙 등의 자연 염료로 물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 중 황벽나무 껍질 ‘황백’, 회화나무 꽃봉오리 ‘괴화’ 등 한약재로 쓰이는 것도 많다. 천에 염색했을 때 분홍빛을 내는 ‘홍화’는 열을 품고 있는 성질이 있어 속옷에 염색할 경우 몸이 차가운 여성에게 좋다. 남색을 내는 ‘쪽’의 경우 아토피 피부질환에 효과적이다. 홍 대표는 “천연 염료는 기본적으로 항균·방충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과정은 쉽지 않다. 천연 염료에서 색을 추출하고, 천에 여러 번 염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염료 추출 방법도 재료마다 다르다. 기본적으로 재료를 물에 넣고 끓이면 되지만, 알코올·잿물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쪽·홍화 염색은 색을 추출하는 데만 열흘이 걸린다. “쪽과 홍화를 잘 다룰 줄 알면 하산해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연 재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색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매염제에 따라 한 가지 염료에서 다양한 색이 나온다. 천에 염료가 잘 스며들게 도와주는 매염제로는 백반·식초·철물(녹물)·동, 알칼리성 재료 등이 있다. 백반은 염료의 본래 색을 살리고, 식초는 염료의 색을 연하게 하거나 노란빛이 돌게 한다. 철물은 흙색 계통으로 되고, 동은 초록빛이 돌게 한다. 알칼리 재료는 기존 염료의 색을 보라나 붉은 계통으로 변하게 한다. 천연 염색을 할 때도 여러 가지 색을 섞을 수 있다. 염색된 천에 다른 색으로 또 염색을 하면 두 색이 섞인다. 천연 염색한 옷은 빨 때 반드시 중성세제를 써야 한다. 알칼리성 세제는 염색된 천을 보라나 붉은 계통으로 변하게 한다.

전통 천연 염색을 배울 수 있는 곳

하늘물빛
서울 삼청동 35-167 02-739-6352 www.macart.co.kr

원광지디털대학교 천연염색 지도사 과정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2 070-7730-0057 www.wdu.ac.kr

천연염색연구원
경기도 부천시 심곡3동 360-17 032-662-2310 www.naturalcoloring.co.kr

문화공간 예곡
충북 옥천군 청산면 예곡리 150 043-733-0978 www.yeg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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