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hef Battle] 셰프 배틀 주제 - 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승부의 세계에선 이런 일도 있다. 이번 배틀에 신정했던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팀이 배틀 사흘 전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불참 시엔 기권패로 처리하겠다며 다시 한번 의사를 타진했지만 최종적으로 ‘기권패’를 선택했다. 일주일 전에 주 재료를 통보하는 터라 이미 재료가 통보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기회의 형평상 다른 팀으로 교체할 수는 없었다. 이로써 이성준 하얏트 리젠시 인천 셰프팀은 다소 싱거운 승리를 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요리를 보면, 그의 승리가 ‘어부지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양선희 기자

쌀은 쉽지 않은 주제였다.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고, 향도 없다. 이 때문에 쌀로 맛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셰프는 이런 한계를 ‘질감의 요리’로 풀어냈다. 한 접시 안에는 세 가지 타입의 쌀이 등장한다. 부드러운 쌀, 쫄깃한 쌀, 바삭한 쌀. 이러한 법칙을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통일감 있게 유지했다. 디스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스 크러스트를 두른 스테이크, 쌀로 만든 라비올리와 뇨키등의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심사단과 스태프들로부터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글=김현명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장소협찬: 샘표식품 지미원

애피타이저│쌀 무스 가지 팀발로 & 새우 그레몰라타

쌀을 무스·파우더·크리스피 형태로 표현했다. 빵 속에 마시멜로가 숨어 있는 초코파이처럼, 가지 팀발로를 반으로 쪼개면 하얀 라이스 무스가 흘러나온다. 가지 팀발로 위에 올려진 새우 가장자리에는 튀긴 쌀을 갈아 새콤한 맛의 오렌지 껍질과 믹싱해 뿌려주었다. 장식인 줄만 알았던 스낵에도 쌀이 숨어 있었다. 샤프란에 불린 쌀을 스낵 형태로 만들어 바삭거리는 식감까지 더했다.

주재료: 가지·쌀·잣·코코넛·우유·새우·오렌지·허브(파슬리·타임·로즈마리) 등

만드는 과정

-가지는 오븐에 구워 속만 빼내 말린 토마토와 올리브 다진 것을 함께 넣고 볶는다.

-밥·우유·코코넛을 끓여 믹서기에 곱게 갈아 체에 내리고, 휘핑한 계란 흰자·젤라틴·잣을 섞어 쌀 무스를 만든다.

-튀긴 쌀과 말린 오렌지 껍질은 믹서에 갈고, 여기에 다진 허브를 섞어 그레몰라타를 만든다.

-새우를 팬에 지진 뒤 그레몰라타를 뿌려준다.

디스플레이: 몰드에 가지를 얇게 깔아준 후 쌀 무스를 중앙에 놓고 다시 가지로 덮어준다. 그 위에 새우 그레몰라타와 새싹, 크리스피 쌀을 놓고 가지 팀발로 주변에 차이브 오일을 뿌려준다.

메인│한우 안심 크런치 라이스 크러스트와 찹쌀 뇨키&라비올리

안심스테이크 가장자리를 바삭한 라이스 크러스트로 감싸 고소한 맛과 씹는 재미를 더했다. 찹쌀 반죽을 이용한 라비올리와 뇨키는 셰프가 가장 공을 들인 메뉴. 글루텐이 없어 잘 찢어지고 충분히 가열하지 않으면 설익기 쉬운 쌀 반죽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한번 팬에 굽는 한식의 지짐이 조리법을 응용했다.

주재료: 한우안심·튀긴쌀·머스터드·허브·찹쌀가루·리코타치즈·파마산치즈·계란·우유·더덕·마늘쫑·아티초크·체리토마토·레드와인 소스

만드는 과정

-안심 옆면에 머스터드를 바르고 거칠게 간 튀긴 쌀과 허브를 입힌다. 팬에 아래·위만 구워서 버터를 올려 오븐에 구워준다.

-찹쌀가루와 리코타 치즈·허브와 파마산 치즈를 섞어 반죽한 뒤 40분 정도 둔 다음 뇨키 모양을 만들어 데쳐서 팬에 구워준다.

-찹쌀에 계란·파슬리·소금·오일·우유를 넣어 라비올리 피를 만든다. 마늘쫑과 더덕, 리코타 치즈를 섞어 속을 만든다. 라비올리는 팬에 지진다.

-레드와인은 졸인 후 데미 그라스와 타임을 넣고 졸여준 후 버터를 넣어서 소스를 만든다.

-아티초크는 팬에 구워 준비하고, 체리토마토는 오븐에서 살짝만 익혀준다.

디스플레이: 라비올리 위에 안심을 비스듬히 놓고 주위에 뇨키를 놓는다. 안심 위에 체리 토마토를 놓고 그 위에 아티초크를 놓는다. 소스를 뿌려주고 타임으로 장식한다.

디저트│쌀 브라우니와 파르페

층층이 쌓아올린 내용물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쌀이 숨어 있다. 가장 위층의 초코볼에는 우유로 지은 밥과 젤라틴, 휘핑크림을 섞어 만든 부드러운 쌀 무스가 들어 있다. 아이스크림같이 촉촉한 파르페와 브라우니 속에는 캐러멜 시럽으로 코팅한 라이스 누가틴을 넣어 씹을 때마다 쌀알이 톡톡 터지는 재미를 주었다.

주재료: 쌀·마스카포네치즈·생크림·슈가파우더·초콜릿·밀가루·계란·라즈베리·바닐라 빈

만드는 과정

-폰당과 물엿을 끓여 갈색이 나면 쌀을 넣어 굳힌 뒤 거칠게 간다.(라이스 누가틴)

-마스카포네치즈와 슈가파우더를 섞은 후 휘핑크림과 라이스 누가틴을 섞어 라이스 파르페를 만든다.

-밥을 짓듯 우유로 쌀을 찐다. 쌀이 익으면 설탕을 넣고 뜸을 들인 후 젤라틴과 휘핑크림을 넣고 섞어준다.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초콜릿을 코팅한다.

-녹인 버터와 설탕·계란·코코아파우더·밀가루·소다·헤이즐넛파우더·호두·라이스 누가틴을 섞어 오븐에서 구워준다.

디스플레이: 브라우니를 놓고 그 위에 파르페를 놓은 후 바닐라 소스와 라즈베리 소스를 뿌려준다. 그 위에 설탕 튈레를 놓고 라이스 무스를 올려준 후 라즈베리로 장식한다.



“한식 재료 쌀, 이탈리아 요리와 인상적 궁합”

경쟁자 없는 게임이 아쉬웠다. 매 코스 바삭했다 부드러웠다 쫄깃해지는 쌀의 변주에 심사단 모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심사단도 처음 ‘쌀’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그 뻔한 주제로 어떤 요리를 만들지?”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셰프가 내놓은 ‘뻔한 재료로 만든 뻔하지 않은 요리’는 박수에 인색한 심사단의 박수를 끌어냈다. 한마디로 ‘맛있고도 재밌는 요리’라는 평가였다.

애피타이저 가지와 쌀 무스의 조화가 예상외로 좋았다. 또 부드러운 무스에 탱글탱글하고 짭짤한 새우를 곁들여 씹는 맛까지 배려했다. 새우 위에 뿌린 쌀가루는 고소함을, 오렌지 껍질 가루는 향긋함을 줘 한입만 베어물어도 여러 맛이 오묘하게 남는다.

메인 스테이크를 주로 하면서도 쌀이라는 재료를 소홀히하지 않았다. 고기 겉면을 감싼 라이스 크러스트는 시각적으로도 새롭지만 고소한 맛 때문에 고기의 느끼함을 덜어줬다. 여기에 사이드로 만든 쌀 라비올리와 뇨키는 메인을 압도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지짐떡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이탈리아 파스타의 맛을 잃지 않았다. 특히 양식을 먹을 때 밥을 먹고 싶은 게 한국인들인데 쌀로 라비올리와 뇨키를 곁들이니 밥 생각이 안 났다.

디저트 쌀로 만든 디저트로 젤라토·한과 등을 예상했지만 더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초코볼·파르페·브라우니 모두 단맛이 센 디저트인데, 속에 고소한 쌀을 숨겨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튀기고 으깨고 구워낸 쌀의 질감이 각각 달라 디저트가 코스의 하나가 아닌 완성된 요리로 느껴졌다.

코스의 조화 한식 재료인 쌀을 셰프의 전공인 이탈리아 요리에 응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접시마다 쌀의 형태와 맛에 변화를 주면서도 다른 재료에 묻혀 소홀하게 다루지 않은 점이 특히 훌륭했다.



이성준 셰프 “반죽 잘못하면 떡, 살짝만 볶아도 튀김 … 어렵네요”

“배틀 당일 아침까지도 레시피를 확정하지 못했어요. 조금만 바꾸면 더 괜찮은 맛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었죠.”

이성준 셰프는 배틀장에 들어서면서도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주제를 받고 난 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주방에서 쌀과 씨름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는 그에게 동료들은 “쌀밥을 맛있게 지어서 된장국이랑 내놓으라”고 우스갯소리도 했단다.

“쌀이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고요. 글루텐이 없어서 반죽을 해도 잘 뭉쳐지지도 않고, 잘못 하면 떡이 돼 버리고, 살짝만 볶아도 튀김이 되니 난감했어요.”

그는 연습시간의 3분의 1을 믹서기로 쌀 가는 데 소비했다고 했다. “쌀이 너무 애를 먹이니깐 나중엔 승부를 떠나 도대체 상대팀은 어떤 요리를 들고 나올까가 더 궁금했어요. 기권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점이 제일 아쉬웠어요.” 이 셰프는 이번 배틀이 첫 요리대회 출전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남들보다 요리를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대회는 엄두도 못 냈어요. 그런데 이거 한 번만 더했다가는 사람 잡겠는걸요.” 하지만 그의 엄살과는 달리 실제로 요리에 들어가자 그는 차분하고 창의적인 요리를 해내 심사단과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맛 심사단 ●신효섭 블로그 ‘블링블링 신군 쿠킹클래스(blog.naver.com/ssambear)’ 운영. 동양매직쿠킹클래스·이마트 등에서 가정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박영경 블로그 ‘아키라의 로망백서(http://blog.naver.com/akides82)’ 운영자. 책 『블로그 ON 』 『오븐엔조이 홈베이킹』을 냈다. ●박재은 요리사·칼럼니스트로 『레드쿡 다이어리』 『레드 캣 오픈키친』 등 요리 관련 TV 프로를 진행했다. 『육감유혹』 『밥시』 등을 썼다. ●최승주 요리연구가 겸 푸드 스타일리스트. 『최승주와 박찬일의 이탈리아 요리』 『맛있는 도시락』 등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