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준비 안된' 참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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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측은 선거운동 기간중 줄곧 '준비된 대통령론' 을 외쳤다.

선거후 金당선자는 외환위기를 직시, 사적 채널까지 포함한 외교역량을 동원해 국가부도 위기를 넘기는 등 그 구호가 허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金당선자측 일부 주변 인사들이 준비된 집권세력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 불안케 하고 있다.

경제비상대책위와 또다른 실세인 대통령직 인수위 주변에서 일고 있는 잡음이 전형적인 것들이다.

지난 29일 경제비상대책위의 심야대책회의. 기업 부도방지 대책을 논의하던 중 황당한 주장이 당측위원 한명으로부터 제기됐다.

"말 안듣는 은행장들에겐 사표를 받자. " 불쑥 나온 이 말에 함께 자리한 정부측 위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70년대 개발독재식의 발상도 발상이지만 금융감독위의 위상을 놓고 "관치금융 심화" 논란 때문에 회의 몇시간 전까지 국회가 떠들썩했던 터다.

금융산업 선 (先) 정리해고 도입을 둘러싼 잡음만 해도 그렇다.

비대위는 외환위기 해소를 위해 연내 입법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법안통과는 보기좋게 무산됐다.

이를 위한 원내대책 논의절차가 생략됐거나 아니면 무시된 탓이다.

팀워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정 혼란은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집권당의 책임있는 인물들의 '준비 안된' 말이나 어설픈 행동이 난무할 때 바로 국정 난맥상이 야기된다.

인수위에서도 비슷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본격 업무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비리 조사' '책임 규명' 등의 설익은 뉴스가 난무한다.

그러다 보니 "정권 인수가 목적인지, 야당성을 바탕으로 한 한건주의식 국정감사가 목적인지 모르겠다" 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급기야 金당선자는 30일 인수위원들을 질책하고 '입조심' 을 당부했다.

선거를 통한 첫 여야 정권교체는 역사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역사성은 정권교체 세력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으로 연결돼야 빛을 발한다.

현 정부가 개혁정책의 실패로 집권초 문민정부 탄생이란 역사적 의미까지 깡그리 까먹었음을 金당선자측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대 (代) 를 잇는' 정권의 실패를 감당하기엔 지금 우리의 현실은 너무 어렵다.

'준비된 대통령' 을 뽑은 유권자들의 염원을 金당선자측 인사들은 곱씹어야 한다.

박승희<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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