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니면 말고’ 인터넷 폐해는 누가 책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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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경계선은 어디쯤이어야 하는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해온 박대성씨에게 그제 1심 법원이 내린 무죄 판결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검찰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힌 만큼 우리는 상급심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 이와 별도로 인터넷에서의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주장이 초래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국회가 나서서 법적인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

법원은 박씨가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적으로 허위 사실이라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 벌칙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예상되는 후유증이다. 신문·출판·방송 등 기성 언론은 관련 법규와 사내 규정에 근거해 허위 보도·주장을 미리 거르거나 엄격한 사후조치를 한다.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네르바 오보 사태’를 부른 『신동아』 관계자들도 자체 조사를 거쳐 해임 등 중징계를 감수했다. 그런데 10세 이상 국민의 80%가 이용하는 인터넷에서는 남의 것을 짜깁기한 선동적인 주장을 익명으로 마구 올려 커다란 폐해를 불러도 무제한 면책된다면 과연 온당한가.

박씨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은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되기 10년 전인 1984년에 시행됐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한’이라는 죄목도 그동안 벌금액만 상향 조정되면서 그대로 유지돼 왔다. 그러니 낡아빠진 법을 찾아내 적용한 검찰은 검찰대로 궁색해졌고, 법원도 판단하는 데 고충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는 인터넷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규범이 필요한 이유다. 더구나 요즘은 기성 언론보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훨씬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력을 갖추고 있다. 얼마 전 대법원이 포털사이트에 대해 ‘피해자의 요청이 없더라도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결과라고 본다.

물론 다양한 수준과 나이의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인터넷에서의 ‘책임’을 기성 언론과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책임만 강조하다가 거꾸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언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우(愚)를 범할 우려도 있다. 인터넷의 순작용이 정부 기관 등 힘있는 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위축돼서도 안 된다.

욕설 섞인 차원 낮은 ‘짜깁기 논문’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에 대한 반성을 포함해,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제부터라도 활성화돼야 한다. 적어도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인터넷의 장점과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살리면서, 어느 지점부터는 책임도 묻는 적정선, 레드라인(redline)이 필요하다. ‘아니면 말고’의 피해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만큼 이 논의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서도 안 된다고 우리는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