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죽을 각오로 하승진 막아야지 살 생각 먼저 하니 못 막을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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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95년 2월. 농구 대잔치 준결승에서 절대 열세로 평가받던 삼성은 서장훈의 연세대를 2승1패로 누르고 결승에 올라가는 이변을 낳았다. 그러나 삼성이 이긴 두 경기 모두 플레이가 거칠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최종 3차전에선 서장훈이 들것에 실려나갈 정도로 경기가 험악했다. 연세대를 응원하는 오빠부대는 물론 농구팬 대부분이 삼성의 플레이를 비신사적이라며 욕했다.

그러나 골수 농구인 사이에선 삼성 김인건 감독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었다. “‘골리앗’ 서장훈을 잡을 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냥 물러서는 게 옳으냐”는 논리였다. 농구 매니어 사이에서 이 경기는 전력이 열세인 팀이 우세한 팀에 심리전으로 승리한 명경기로 회자되기도 한다.

현재 삼성도 14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삼성이 챔피언 결정전에서 상대하고 있는 KCC의 하승진은 14년 전의 서장훈보다 15㎝나 더 크다. 삼성은 2차전에서 테런스 레더(2m·5반칙), 이규섭(1m98㎝·4반칙), 박훈근(1m95㎝·4반칙), 김동욱(1m94㎝·5반칙)으로 하승진을 돌려 막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무게 중심은 KCC쪽으로 기울고 있다.

안준호(사진) 삼성 감독은 2차전 패인을 분석하면서 “자유투 성공률이 40%인 하승진의 아킬레스건을 이용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삼성 빅맨들이 파울을 안 한 것은 아니다. 4명이 합쳐 18개의 반칙을 했다. 그러나 안 감독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는 “선수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하는데 살 생각을 먼저 하니 졌다”면서 “감독으로서 매우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안 감독이 거칠게 나가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다. “그렇게 이기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당연히 페어플레이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안 감독은 14년 전 서장훈을 입원하게 한 삼성 박상관의 플레이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LG·모비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팔꿈치로 얼굴을 쳤다는 논란을 몇 차례 일으켜 KBL로부터 제재금 600만원을 받은 삼성 외국인 선수 레더의 플레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안준호 감독은 패배를 두고 볼 성격이 아니다. 3차전부터 경기는 뜨거워질 것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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