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오바마 - 차베스의 악수, 그리고 북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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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어제 각 신문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이 실렸다. 17~1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오바마는 스페인어, 차베스는 영어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손을 잡았다. 달라진 세상을 상징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답답한 마음으로 북한을 생각한다. ‘반미(反美)의 맹주(盟主)’를 자처해 온 차베스와도 오바마가 악수를 하는 마당에, 북한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2006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차베스는 “어제 이 자리에 악마가 다녀갔다. 아직도 연단에서 유황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모독적인 언사로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을 공격했었다. 일방주의 외교를 추구하는 미국과 차베스의 화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할 용의가 있다”며 낮은 자세로 먼저 악수를 청했고, 차베스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다”며 손을 잡았다.

오바마의 미국은 부시의 미국과 확연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군사력에 바탕을 둔 하드파워와 미국의 매력을 발산하는 소프트파워가 결합된 ‘스마트 외교’로 전 세계에 손을 내밀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는 이란과 시리아, 러시아와 유럽, 쿠바와 베네수엘라,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까지 전방위적으로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란에는 우라늄 농축을 당분간 허용하는 조건으로 대화를 제의했고, 쿠바계 미국인들에 대한 송금과 여행 규제를 철폐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테니 당신도 주먹을 펴라”는 ‘오바마 독트린’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지만 북한만 유일한 예외다. 오바마는 취임 이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북한에도 화해의 신호를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장거리 로켓의 발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 및 미 국무부 요원의 추방이었다. 오바마의 외교 어젠다에서 북한의 우선순위를 앞당기고, 협상력을 키워보겠다는 계산이겠지만 이는 북한의 명백한 오판이다. 상대가 손을 내밀었는데 뺨을 때려서야 어떻게 대화가 되고, 협상이 되겠는가. 이 좋은 기회를 못 살리고 허비한다면 북한은 두고두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오바마 진영에서 북한에 대해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계속 벼랑 끝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북한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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