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태풍 지방정가도 지각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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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대선을 앞두고 단체장.시도의원들이 대거 당적을 옮기는등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줄서기에 관심을 쏟았다.

이같은 지각변동은 대선결과와 함께 단체장.지방의원 선거를 불과 5개월을 남겨둔 지방정가 판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방정가의 소속정당 변화와 예상후보들의 정치적 계산을 점검해 본다.

“소신을 가지고 일해왔지만 제도적.법적 한계를 느껴 지역발전과 주민들을 위해 여당 입당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대선을 앞두고 이같은 입당변을 내세우며 소속정당을 바꾼 상당수의 단체장.의회의원들이 예상치 못한 대선 결과로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지역발전을 위해 결단을 내린 여당 입당 논리가 일시에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충북의 한 도의원은 "지자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던 단체장들의 계산이 완전히 빗나가 지방정가도 재편이 불가피하게 됐다" 고 말하고 "먼저 뛴 말이 빨리 지친다고 이럴 때는 무소속이 제일 부럽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으로 변신하고, 민주당이 국민회의와 이른바 꼬마 민주당으로 분리된뒤 신한국당.민주당이 통합해 한나라당으로 새로 태어난 정당 차원의 당적 변경 외에도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줄서기' 로 심한 몸살을 앓은 지방정가가 대선 결과에 따른 또한번의 판도 변화를 불가피하게 겪게 된 것이다.

현재 자치단체장은 시.도 지사 16명, 기초단체장 2백29명등 모두 2백45명. 이중 대행체제의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제외하면 실제적으로는 2백43명이다.

당초 95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88명으로 가장 많았고 여당이었던 민자당 75명, 자민련 27명, 무소속 55명으로 분포돼 있었다.

이것이 대선 직전에는 한나라당이 1백20명으로 가장 많아졌고 국민회의 72명, 자민련 26명, 국민신당 1명, 무소속 16명으로 분포도가 대폭 달라졌다.

한나라당의 경우 무소속의 대거 입당과 신한국당.민주당의 지분 결합으로 크게 증가한 반면 국민회의는 민주당과의 분당으로 다소 감소했다.

자민련은 정치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변동폭을 최소화했으며 국민신당의 경우는 단체장 영입에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정은 의회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광역의원의 경우 민자당의 3백45석이 한나라당에서는 4백96명으로 증가했다.

민주당의 3백83석은 국민회의에서는 3백6석으로, 자민련은 94석에서 86석, 국민신당은 16석을 확보했다.

무소속의 경우 당초 1백42석에서 1백4석으로 감소해 그동안의 줄서기 상황을 대변해준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문희갑 (文熹甲) 시장과 구청장.단체장들이 잇따라 한나라당에 입당, 그동안의 무소속 강세지역에서 다시 단일 정당지역으로 되돌아갔고 경남지역도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 단체장 5명이 한나라당으로 돌아서는 변화를 겪었다.

강원지역의 경우 자민련이 대거 한나라당으로 옮기면서 정치권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킨 곳. 최각규 (崔珏圭) 지사를 비롯한 7명의 단체장과 도의원들이 지난 11월 한나라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반전된 정치세가 대선으로 재반전돼 버렸다.

충북지역 역시 주병덕 (朱炳德) 지사가 주도한 정치적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명암이 크게 엇갈린 지역으로 손꼽힌다.

朱지사에 이어 金종철 보은군수, 趙성훈 전 충북도의회 의장, 충북지사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李원종 전 서울시장까지 한나라당 공천을 겨냥해 입당했지만 대선 패배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신한국당을 떠나 국민신당으로 옮긴 홍재형 (洪在馨) 전 부총리의 행보도 국민신당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지지도와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지역은 무소속 또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대거 한나라당으로 옮긴 것이 특징. 민주당과의 통합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이한동의원을 비롯한 소속 국회의원.단체장들의 집요한 설득도 한몫했다.

그러나 성남.의정부.부천.시흥.군포시등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 단체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5개지역은 박빙을 기록한 의정부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민회의 강세지역으로 돌아서 경기지역의 정치세력 재편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가 재편 조짐은 벌써부터 머리를 들고 있다.

특히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대거 말을 갈아탄 충북.강원을 비롯해 무소속의 한나라당 입당이 많았던 경기지역등은 정치세력간의 판도 변화가 가장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무소속이 한나라당으로 대거 편입된 경북.대구.경남지역도 국민회의의 입지 강화로 내년 선거를 향한 세 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자의든 타의든 당적을 옮긴 이들 단체장.의원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반응은 찬반양론으로 맞서고 있다.

문희갑대구시장의 경우 "대다수 시민들이 지역정서와 가장 부합되는 한나라당 입당을 원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지만 "시민.주민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측면이 더욱 강하다" 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뽑아준 유권자를 배신한 행위” 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 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국민회의의 대선 승리에 따른 중앙의 정계개편은 지방정가에까지 여진을 몰고 올 것만은 틀림없다.

정찬민·최준호·이찬호·안남영·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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