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편지 ⑨ 못 이룬 첫사랑 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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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가장 많이 알려진 다윈의 초상화를 보면 얼굴이 절반 쯤 턱수염에 묻혀있다. 40대 중반부터 기르기 시작한 수염은 어찌 보면 가면 같은 것이었다. 시원찮은 건강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뜻에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인이 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팬 다윈의 초상화를 보면서 떠나는 첫사랑에 애를 태우던 청년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윈의 일생에서 부인 엠마 이외에 등장하는 여자는 단 한명, 동네 친구였던 패니 오웬이다. 서너 해 동안 사귀었지만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떠나자마자 패니는 유망한 젊은 국회의원 비둘프와 결혼해 척크 성(城)에 정착했다. 패니는 다윈에게 좋은 친구로 남아달라고 했지만 다윈의 심정은 괴롭기 그지없다. 다윈이 패니에게 보낸 편지는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누나 캐롤라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인을 잃은 다윈의 열정과 슬픔을 짐작할 수 있다. 평범하든 비범하든 사람이 살면서 비슷한 일들을 모두 겪는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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