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상극의 행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2국>
○·쿵제 7단 ●·저우루이양 5단

제3보(35~46)=두 가지 길이 있다. 집을 짓는 것과 집을 부수는 것. 선택은 ‘체질’과 관련이 있다. 이창호 9단은 내 쪽을 키우기를 좋아하고 뛰어들기를 기피하는 반면 이세돌 9단은 격파나 침투 쪽에 더 끌린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일반 아마추어들인데 대개 남의 집 지어지는 걸 눈뜨고 보지 못한다. 짓는 것보다는 깨는 쪽이 아무래도 통쾌한 것을 어쩌랴.

35가 오면 36이란 한 수가 저절로 떠오른다. 저우루이양 5단도 36이 너무 좋으니까 뭔가 분탕질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책에 나오는 수법이 좀 많은가). 하지만 이 혈기 왕성한 열아홉 살 젊은이는 도사처럼 꾹 참고 있다. 36을 내주더라도 37 정도로 삭감하면 전국의 균형이 맞아 들어간다. 그러니 서두를 건 없다고 본 것이다. 흑이 엷은 곳이니까 일단 38로 나가본다. 39는 준비된 수. 행마에는 저마다 상극이 있는데 38 같은 마늘모 행마엔 이처럼 밑 붙이는 행마가 상극이다. ‘참고도1’이면 흑의 목적이 100% 달성된다. 하지만 39 같은 밑 붙임 행마에는 40에 이어 42로 밀고 들어가는 강수가 상극이다. ‘참고도2’ 흑1이 이때의 최강수지만 지금은 백△ 때문에 백2로 축. 흑은 물러서야 했고 백은 46까지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39라는 행마의 맥은 한낱 헛된 도발이었을까.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