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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그룹 '솔리스트',가수데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솔리스트? 가수라는데 어째 영 생소한 이름이다.

에이~ 혹시 '솔리드' 아냐? 근데 솔리드는 세명인데 솔리스트는 왜 여섯명이나 되지? 그것도 30대 아저씨들만. 이들이 누군지 궁금하다면 이 노래를 떠올려 보시길.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 가 - .땅굴파고 토꼈나 미그기 타고 날랐나. …잡히기만 해봐라 아오지야요. ” 순간 “!” 하며 무릎을 치는 수만 인파. 자, 92년도로 테이프를 3배속 리와인드 - . 당시 MBC 간판코미디프로였던 '웃으면 복이 와요' 에 어느날 갑자기 혼성합창단이 등장했다.

웬 합창단? 할 새도 없이 '오데로 갔나' 는 인구에 회자되며 그로부터 한달간 '눈물 콧물 다 짜게 하면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노래는 '웃으면…' 의 PD였던 김영희씨가 중국 옌볜 (延邊)에서 떠돌던 구전가요 테이프를 구해와 단원들이 채보 (採譜) 를 하고 작가팀에서 가사를 붙였던 것. 솔리스트는 이 '오데로 갔나' 의 주축멤버들이 94년 MBC예술단에서 나와 만든 아카펠라 그룹이다.

리더 김재우 (카운터테너) 씨를 비롯, 이경훈 (바리톤).이재호 (베이스).이상익 (카운터베이스).김경주 (테너).김철한 (하이테너) 씨등 모두 여섯명. 독립의 변 (辯) 을 들어보자면. “하고 싶은 노래만 부를 수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죠. 때로는 저희 취향에 안 맞는 노래도 불러야 하고…. 회사에 매여 있으면 제약이 많잖아요. ” 그래!

결심했어. 분가하기로. 의논한지 10분만에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하, 어디로 갔나 했더니 가수로 데뷔를 한거다.

그렇다면 히트곡…? 불행히도 이들은 아직 히트곡은커녕 변변한 독집앨범 한장 없다.

눈치챘겠지만 댄스뮤직이 이미 주류가 돼버린 국내가요계에서 아카펠라 그룹이 '뜨긴' 좀 무리가 아닌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음반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다양하지가 않아요. 10대들 위주 댄스뮤직이나 그때그때 유행하는 음악 아니면 장사가 안되니까 저희들한테도 댄스뮤직 하라 그러더라구요. ” '팔리는' 음악을 하라는 논리. '돈 안되는' 음반을 내주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기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해 이들의 재능을 알아본 기획자를 만났다.

미국의 6인조 아카펠라 그룹 '테이크 식스' 와 공동앨범을 내고 조인트공연도 하기로 했다.

그래미상을 7개나 받은 이 실력파 그룹과의 앨범제작은 솔리스트로선 엄청난 '도약' 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돌연 모든 게 무산됐다.

그 회사에서 수입한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재정상태가 극도로 악화됐고 음반발매는 취소됐다.

그리고나선 다시 데모테이프 들고 기획사.음반회사 문 두들기는 유랑길에 올랐다.

뭐 가수 되려고 왕년에 춥고 배고프고 눈물나는 세월 안 보낸 사람 드물지만….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좀더 다채로워지지 않으면 저희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설 곳이 없어요. 특정층만을 겨냥한 음반만 내려 하고 그외의 음악에 대해선 철저히 무관심하잖아요. 제 말은 댄스뮤직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댄스뮤직만 듣게끔 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죠. ”비주류에게도 설 땅을 달라는 얘기다.

솔리스트를 불러주는 이들이 없진 않다.

각종 이벤트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출연섭외를 해와 한달에 수차례 행사무대에 선다.

외국 만화영화 더빙판에 노래와 대사 입히는 것으로도 이름이 꽤 알려졌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썰렁한 바람이 휭 - . 방송국을 나온 후부터 한곡씩 두곡씩 준비해온 노래들이 이젠 앨범을 하나 꾸밀 수 있을만큼 모였다.

리메이크곡.외국곡에 그동안 인연을 맺은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창작곡까지 메뉴는 다양한데…. 앞으로 이들이 '오데로 갈지' 는 여전히 시계 (視界) 제로다.

누군가 흩어진 낱낱의 구슬들을 한데 꿰준다면 어떨는지. 비주류 없이 주류가 있겠느냐는 평범한 이치 몰라?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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