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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로 본 한국 경제위기 전말 분야별 점검…작년부터 잇단 경고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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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금융.외환위기가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과연 미리 알 수는 없었던것일까, 또 언제쯤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데 대한 불안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유사한 위기를 겪었던 나라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이미 작년초부터는 수차례에 걸쳐 여러분야에서 곧 위기가 닥친다는 신호가 있었다.

그 경고신호를 무시해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됐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는 과연 언제 경고신호를 냈었는지,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빚어진 이번 사태가 과거 다른 사례에서 볼 때 어떻게 전개되며 수습될 것인지를 진단해본다.

◇ 금융부문 통상 외환위기를 맞기전에 한동안 통화정책이 느슨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국의 경우 12%대까지 내려갔던 총통화증가율이 6개월후 17%대로, 14개월후인 올 3월에는 드디어 20%대를 넘게 되었다.

돈이 흔해지니 사람들이 돈을 쓰게 된다.

이에 따라 수입도 는다.

원화값이 높게 책정된 상태에서 자본거래자유화로 해외자본까지 들어온 것도 수입품에 대한 과소비에 일조를 하게 됐다.

돈이 흔해졌다고 모든 이자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만성적인 빚경영때문에 자금수요가 여전하고,가계는 가계대로 대출을 늘리게 된다.

위기에 다다를때가 되면 기업.가계 모두 빚더미에 앉게 된다.

▶신호1: 보유외환에 비해 통화가 빠르게 늘어났다.

한국은 오랫동안 환율안정을 외환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경상수지 적자구조에서 이 정책을 유지하려면 상당 규모의 외환보유고가 필요하다.

특히 단기외채의 비중이 큰 경우는 더욱 그렇다.

환율절하가 불가피하다는 기대심리에 의해 자본유출이 발생하면, 외환보유고가 감축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위기 9개월전부터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든다.

자본의 해외유출이 예금잔고의 감축으로 나타나는 기간이다.

외환보유고가 최저수준에 이르렀을때 금융위기가 오게 된다.

한국은 위기가 발생하기 1년2개월전인 작년 늦봄을 정점 (360억달러) 으로 외환보유고가 계속 줄어들었다.

경고신호가 더 일찍 울린 것이다.

그 결과 통화가 외환보유고에 비해 늘어났다.

외환보유고 1억달러당 4천6백억원이던 통화량이 이때부터 계속 늘어나 금년 가을에는 6천5백억원에 이르렀다.

원화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원화에 대한 '공격' 에 따른 외환위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 대외부문

▶신호2: 수출이 활력을 잃었다.

장기간동안 높은 실질환율이 유지돼, 위기가 닥치기 1년반전부터 수출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는 것이 다른 나라들의 경험이었다.

한국의 경우 94년부터 2년이 넘게 달러당 8백원대 미만의 낮은 환율이 유지됐다.

수출이 활력을 잃고, 수입이 폭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작년여름에는 수출의 절대액이 그 전해에 비해 줄어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도 외채상환부담 등을 이유로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업계와 금융계의 요구를 이겨내지 못했다.

고비용구조해소와 수출활력회복을 위해 환율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시장 압력' 에도 불구하고 시장개입에 의해 환율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도저히 압력을 이겨내지 못해 작년말부터는 환율상승을 일부 허용했고 그 결과 금년 여름, 수출이 평년신장률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활력회복이었다.

◇ 실물경제

▶신호3: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성장률이 급감하면 금융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더구나 그것이 환율의 고평가와 고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면, 쌍둥이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한국은 작년초부터 고비용구조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는 구조적 요인에 경기순환적 요인까지 겹쳤다.

작년2분기부터는 7%미만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

경기하강은 금년 2분기부터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회복으로 회복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잠깐 일로 끝났고 이제는 경제위기속에 민간소비와 투자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신호4: 주가가 올랐다가 급락했다.

자산가격상승에 의한 유지되던 주가는 금융위기 1년전에 갑자기 내려앉기 시작한다.

한국도 작년 5월이후 주가가 하락세를 지속해 왔다.

부동산.주가 등 자산가격의 급락은 전부문으로 확산된다.

올여름 경기회복소식에 잠시 주가가 오르기는 했으나, 이들 자산운용에 과다노출된 금융기관의 부실이 위기를 몰고오는 것을 되돌이키는 못했다.

◇ 위기, 앞으로 어떻게 벗어나나. 외환.금융의 쌍둥이위기가 왔다고 해서, 영원히 여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보통 1년 내지 1년반이면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과거 유사한 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의 경험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외환보유고 : 보통 외환위기를 거치고 난 다음, 1년동안 외환보유고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외환위기때문에 급격히 올라간 환율 덕에 수출활력이 한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가 평상시 수준을 윗돌때까지 보유고회복이 계속되다가 그 이후 6개월에 걸쳐 평상시 수준으로 되돌아 온다.

물론 금융위기가 겹치는 경우에는 환율.수출.외환보유고의 회복이 더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율이 급등했던만큼 수출회복세가 빠르고 따라서 외환보유고의 회복도 생각보다는 빠를 공산이 크다.

▶환율 : 위기직후부터 내려오기 시작하지만 '정상적' 인 수준으로 되돌아 오는데 꽤많은 시간이 걸린다.

1년반이 지나도 그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10%정도 높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위기발생초기에 전문기관들은 적정환율을 달러당 920원에서 950원까지 제시했다.

환율이 다시 내려오는 만큼 교역조건 (수입품에 비교한 수출품의 가격) 이 개선돼, 수출이 물량뿐 아니라 수출가격도 올라가 전체적으로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는 많게 된다.

▶경제성장 : 수출활력이 1년넘게 계속되는 덕에 외환위기발생후 1년내에 평상시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과거 다른 나라의 경험이다.

그 덕에 위기때 바닥에 떨어졌던 주가는 약10개월동안 미미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위기발생 1년후쯤에 평상시 수준을 회복한다.

그렇다고 수입세까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발생전에 이미 경기후퇴로 힘을 잃고 있던 수입세가 막상 위기를 맞게 되면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그 수준이 1년반 이상 유지된다.

▶경상수지 : 수입감소 기간만큼 개선추세가 지속된다.

결과적으로 경상수지적자가 위기 3개월전까지 늘어나다가 그 이후 1년반까지 개선된다.

나라마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다르다.

위기국면에 벗어나는 기간을 얼마나 줄이느냐는 위기극복에 필요한 구조조정을 얼마나 빨리 진행시키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가올 '좋은 시절' 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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