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이것만은 고치자]1.낮잠자는 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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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경남지방에서는 달러나 엔화 등 외화 (外貨) 의 '장롱 탈출' 이 한창이다.

경상남도와 21개 시.군 및 경남은행에 만들어진 '외화 되팔기' 창구에 코흘리개부터 할아버지까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도내 1백여개 사회단체도 동참, 지난달 20일 시작된 이 운동엔 보름만에 미화 3백20만달러와 엔화 3천4백만엔이 모여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0억원이 넘는 큰 돈이다.

평범한 도민 1만3천여명이 힘을 보탠 결과다.

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제 다른 자치단체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의 아이디어를 낸 김혁규 (金爀珪) 경남지사는 "경남도보에 도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내고 지방언론사 등에서도 적극 홍보를 해 기대이상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시민들의 나라사랑 앞에 공직자들이 오히려 부끄럽다" 고 말했다.

주부 최영수 (崔英秀.33.경남창원시용호동) 씨는 8일 오후 화장대 서랍속에 보관해 왔던 6백달러를 들고 집 부근 은행을 찾았다.

최근 환율이 계속 올라 더 놔두면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한푼의 달러가 아쉬운 국가경제를 위해 마음을 바꿔 먹었다.

崔씨는 "최근 붙잡힌 부유층 가정 절도범이 '집집마다 거액의 외화가 나와 나중엔 외화가 없는 집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고 말한데 충격받았다" 고 했다.

외화가 바닥나 IMF에 경제주권을 빼앗기는 치욕적인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가운데 이같이 장롱속 외화를 꺼내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하이텔.천리안등 PC통신에서도 장롱속 달러 모으기 운동이 한창이다.

하이텔은 상업은행과 공동으로 '서랍 속의 1달러라도 모으자' 라는 특집 코너를 개설하고 달러모으기 캠페인을 벌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천리안도 외환은행과 공동으로 '경제를 살립시다' 라는 특집 코너를 개설했다.

그 결과 8일 현재 외환은행 본점 금고에 실려온 외화는 지폐 8천여만달러.동전 3만5천달러.엔화 71만엔등 우리돈으로 모두 1천억원어치. 무역회사원 김현석 (金顯錫.30.서울신당동) 씨는 "외국동전은 수송료 문제때문에 해외에 팔아도 반값밖에 못 받으므로 '외국출장때 동전 갖고 나가기' 운동까지 벌여야 한다" 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상진.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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