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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상생쇼·선지쇼 … 자동차 노조의 두 갈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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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막을 내린 서울모터쇼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2년 전 행사 때 볼 수 있었던 수억원짜리 수퍼카를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터쇼에 참가한 수입차 업체도 14개에서 6개로 크게 줄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 일본 도쿄와 더불어 세계 5대 모터쇼로 키우겠다던 조직위원회의 의지를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세계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깊은 탓도 크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 열린 이번 모터쇼에서는 ‘자동차 노동조합의 두 모습’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2일 열린 개막 전 언론 공개 행사에 기아차의 김종석 노조위원장(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이 나타났다. 그는 이날 기아차의 서영종 사장에 이어 단상에 올랐다.

“신차 쏘렌토R의 품질을 책임질 뿐 아니라 판매확대에 적극 나서겠다.”

어떤 모토쇼이건 이같이 노조위원장이 행사장에 나타나 자기 회사 자동차를 홍보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기아차뿐 아니었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쌍용차의 한상균 노조지부장도 이날 모토쇼 회사 홍보관에 나타났다. 그도 쌍용차를 홍보하기 위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간 강경 노조를 주로 상대해 왔던 자동차 업계에서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위기를 맞자 노사 상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개막식이 열렸을 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합 산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기아차의 모닝에 소의 피를 뿌리는 ‘선지 퍼포먼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인 자신들의 피로 만든 자동차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어쨌든 안팎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의 나쁜 노사관계 이미지를 덧씌우는 모습이었다.

이번 모터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노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모터쇼가 끝나던 날 정부는 노후 차를 바꿀 때 세금감면을 해주는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세계 경기침체로 소비산업의 대표 격인 자동차 업체의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자동차 지원대책을 논의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 지원에 앞서 노사가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노사관계가 아직 합리적이지 못해 일반 국민 사이에 정부 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져 국내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컸지만 환율 변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가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모터쇼에서 보여준 상생 의지가 생산현장에까지 전파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문병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