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테러가 최대 이슈 … 총선 뒤에도 ‘경제 제일주의’가 대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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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12면

1989년 실시된 제9대 총선은 의원내각제 국가인 인도의 현대 정치사에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선거 사상 최초로 어떤 정당도 하원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연립정권이 등장한 것이다. 독립 이후 사실상 1당 지배체제를 구축한 국민회의당(NC)의 쇠퇴가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유권자는 국민회의당 등 전국 규모의 정당들이 내세우는 거창한 이상과 목표에 흥미를 잃었거나, 아니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도 총선 전망

유권자의 변화된 태도에 덕을 보기 시작한 것은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군소 정당들이었다. 이 정당들은 ‘다 함께 전진하는 인도’ 따위의 고매한 구호보다 ‘우리 동네의 이익’ ‘우리 종파의 행복’ ‘우리 카스트의 복지’를 내걸며 유권자의 지역적·분파적 불만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름조차 낯선 정당이 연립내각에 참여하게 되고 지난 20년 동안 군소 정당의 도움 없이 어느 누구도 정권을 장악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4월 16일 제15대 총선 뒤에도 이런 양상엔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단독정권 수립을 오래전에 체념한 국민회의당과 인도인민당(BJP) 등 전국 정당들은 기존의 연합 세력들을 규합하고 있고, 공산당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국민회의당의 통일진보동맹(United Progressive Alliance), 제1 야당이자 힌두 국수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의 전국민주동맹(National Democratic Alliance), 공산당과 일부 군소 정당이 연합한 제3전선(Third Front)이 각축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들의 이합집산은 정치 불안정의 가장 큰 요인이다. 왜냐하면 분파적 성향이 강한 군소 정당에 의해 연립정권이 붕괴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96년 제11차 총선 뒤 집권한 인도인민당의 연립정권은 겨우 1석을 가진 군소 정당의 이탈 때문에 13일 만에 붕괴됐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전국적인 규모의 사건이나 스캔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는 눈에 띄지 않는다. 관심을 끈 사건이라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내무부 장관에게 한 언론인이 신발을 벗어 던진 해프닝뿐이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신발 사건 때처럼 신발은 빗나갔지만 ‘신발은 펜보다 강하다’는 유행어를 남겼다.

별 이슈가 없는 맥 빠진 선거에서 유권자는 식료품 가격 상승과 테러 방지 대책 등 생활·안전 관련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인도인의 주식(主食) 중 하나인 밀가루 값은 지난 1년간 약 50% 올랐고,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들도 루피화의 약세로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또 지난해 11월 뭄바이 테러를 전후해 인도 전역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테러에 대한 일반 시민의 불안감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달해 있다.
따라서 통일진보동맹은 ‘보통 사람의 안녕’을 강조하는 선거 구호를 내세웠고 전국민주동맹은 3대 선거 강령 중 두 가지를 경제와 테러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인도 언론기관들은 통일진보동맹이 최다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근소한 차이에 불과해 하원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예측이다. 이는 어느 정당이 승리해도 내각을 구성하려면 또 다른 이합집산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의미다.

90년대부터 숙적인 통일진보동맹과 전국민주동맹이 제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통일진보동맹이 공산당 주도의 제3전선의 지원을 받아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두 정당은 미·인도 민간 핵 협력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지만, 공산당이 힌두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전국민주동맹을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 달 16일 발표될 선거 결과에서 어느 정당이, 심지어 공산당의 제3전선이 집권하더라도 인도의 기존 정책들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방은 계속 추진될 것이고 인도의 최대 수출국이자 최대 투자국인 미국과의 밀월관계도 유지될 것이다.

인도가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중국과는 국경 문제 같은 현안을 덮어둔 채 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 또 동방정책(Look East)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3년간 끌어온 한국·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서두를 것이다. 인도에서 ‘경제 제일주의’는 정권 향배와 관계없이 흔들릴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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