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에게도 손 내미는 오바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逾越節·Passover) 연휴가 9일 밤(미국 동부시간)부터 시작됐다. 유월절은 기원전 13세기 유대인이 모세의 인도로 고대 이집트의 속박에서 탈출(출 애굽)해 자유와 해방을 얻은 역사를 일주일 동안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일 밤 백악관에서 유월절의 가족 만찬 의식인 ‘세데르(Seder)’를 거행한다. 미국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예식을 백악관에서 여는 것이다. 세데르 의식 그대로 누룩 없는 빵(무교병· Matzo)과 양고기, 쓴 나물, 삶은 달걀 등을 먹고, 출 애굽의 의미를 설명하는 전례서 ‘하가다(Haggadah)’를 읽는 시간을 갖는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오바마는 1년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던 중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셰러턴 호텔에서 측근들과 함께 세데르를 열었다. 그때 오바마는 “내년엔 백악관에서 하자”고 했다. 오바마가 약속대로 세데르를 개최하는 데엔 측근들과의 동지애를 다지고,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인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며칠 전 이슬람 국가인 터키를 방문해 “이슬람과의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 오바마가 이번엔 유대인의 마음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는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단체의 워싱턴 사무소 국장인 윌리엄 다로프는 9일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 만찬장에서 무교병을 먹는 행사가 벌어진다는 건 역사적인 일”이라며 “유대인 사회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만찬엔 오바마를 비롯해 부인 미셸과 두 딸, 오바마 부부의 절친한 친구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밸러리 재럿, 시카고의 친구 에릭 휘태커, 미셸의 고문이자 친구인 수전 셔 등 20여 명이 참석한다. 백악관의 두 실세 유대인인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과 데이비드 액설로드 선임고문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유대인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백악관에서 이스라엘의 예식을 공개적으로 주관한 경우는 없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93년 백악관 일부 관계자가 세데르식 만찬을 했지만 클린턴은 불참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