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상천법’ 국회파행 막을 합리적 대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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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당이 9일 박상천 의원의 국회법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회 파행을 막을 수 있는 개혁법안으로 주목된다. 이런 개혁법안을 야당인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에 더욱 반갑다.

‘박상천법’의 핵심 요지는 ‘쟁점법안이라도 무조건 상정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법안 상정이란 심의대상에 올리는 첫 절차다. 그런데 ‘상정’이라는 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절차가 지금까지 늘 국회 파행의 원인이 돼온 것이 우리 현실이다. 지난 연말부터 2월 국회까지 이어진 파행, 해머와 전기톱이 동원된 폭력사태까지 모두가 여당의 법안 상정을 막으려는 야당의 물리력 행사에서 비롯됐다. 여당은 법안을 상정한 다음 다수결로 일방 처리하려 하고, 그래서 야당은 아예 법안의 상정 자체를 봉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요하다는 쟁점법안은 아예 회의 테이블에 오르지조차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반복돼 왔다.

쟁점법안이라도 ‘일단 상정은 하게 만들자’는 법개정안은 지금까지 야당의 반대로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야당이 여당을 못 믿기 때문이다. 상정하고 나면 제대로 된 심의 없이 여당이 밀어붙여 통과시킬 것이란 의심이다. 박 의원은 이러한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보완장치도 함께 내놓았다. 조정절차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란 제도다.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표결 전에 의무적으로 여야가 협의하는 조정절차를 거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협상과 소수 목소리 존중을 위해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미국식에 가깝다. 지금까지 여야가 상호 불신과 적대감 때문에 등한시해온 대화와 타협을 법으로 제도화하자는 취지다.

야당이 반대해온 법을 야당의 당론으로 채택하게 만든 박 의원의 노력도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5선에 당 대표까지 지낸 72세의 원로다. 그가 연초 대정부 질문에서 법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만 해도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대부분의 야당의원이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당에 이용당할 것’이란 이유로 반대했다. 박 의원은 후배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 당론 제출이란 결정을 이끌어냈다.

마침 여당 내 소장개혁 모임인 ‘민본21’ 등도 국회법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박상천법’을 토대로 여야가 폭력 국회를 추방하고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 주길 바란다. 박 의원의 합리적 대안 제시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