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선다변화 조기폐지에 업계 초비상…일본제품 국내 잠식 가속화 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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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쟁력있는 일본 제품의 국내 상륙을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였던 수입선다변화제도가 조기 폐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관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2000년 1월로 예정돼 있던 수입선다변화제도의 폐지시기가 갑자기 앞당겨지면서 개방에 대한 대비책을 미처 세워놓지 못한 관련업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동차.전자.기계등 일본 제품이 우리 제품보다 품질및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 일부 품목의 경우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 가뜩이나 심각한 대일 (對日) 무역수지 적자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기도 한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 (IMF) 은 3일 수입선다변화제도를 가급적 조기에 폐지키로 합의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이 최근 한국 정부와 자금지원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 제도의 조기 폐지를 요청해왔다" 면서 "정부는 곧 이 문제를 같이 논의해보자고 응답했다" 고 말했다.

관련업계는 이 제도의 조기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는 한편 해당 품목의 품질개선 계획을 앞당겨 실시하는등 대일 경쟁력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 현황 = 수입선다변화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78년. 만성적인 대일무역 역조를 개선하고 국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 출범 이후 일본으로부터 시비가 잦았다.

정부는 이에따라 이 제도를 2000년부터 폐지하기로 하고 지난해 WTO와 일본의 양해를 얻었다.

대상품목은 시행 초기에 9백24개까지 늘어나기도 했으나 점차 줄어 현재는 1백13개뿐이다.

그러나 승용차.컬러TV.캠코더.모터사이클.오르간.시계.전기밥솥등 시장 규모가 큰 품목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 자동차 = 일제 소형승용차는 국산차보다 2백만~4백만원 이상 비싸 개방되더라도 큰 경쟁력이 없겠지만, 중대형승용차는 가격차가 거의 없고 품질이 월등해 개방 첫해에 시장점유율 10%를 넘길 것이라는게 자동차공업협회의 전망이다.

산업연구원 (KIET) 도 개방 5년안에 일제 중대형승용차의 점유율이 10%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공업협회는 조기해제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통산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협회 이동화 (李東和) 이사는 "중대형차를 중심으로 국산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애프터서비스를 강화, 일본의 공세에 대비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전자 = 자동차보다는 덜하지만 개방 초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초 미국과 멕시코에서 생산된 소니TV가 국내시장에 수입돼 상당량 팔렸던 사례에서 보듯 가전제품 분야에서 일본브랜드의 위력은 막강하다.

국내 가전업계는 그동안 개방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치명타를 입지는 않겠지만 TV의 경우 장기적으로 20~30% 정도는 일본 제품에 내줄 것으로 보고있다.

문제는 일본 전자제품 유통업체의 국내 진출. 강력한 자금력과 마케팅노하우를 가진 일본 유통업체가 진출하면 현재 우리 가전사의 대리점 체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제품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

김성수 (金聖守) 한국전자산업진흥회 기획과장은 "개방이후 대형TV.캠코더.오디오 앰프등 품목에서 국내업체가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 고 말했다.

◇ 기타 = 베어링등 31개 품목이 다변화로 보호받고 있는 기계업계는 대일경쟁력이 워낙 취약해 조정관세 강화와 부품개발지원 강화등 정부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도자기제품.손목시계.보온병등 생활용품 업계도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

이재훈·홍병기·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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