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하나없이 건강하신 아버지…“10년 더 사시면 9순 잔치도 해드릴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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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민희철 여사 칠순 잔치 때 모인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했다.[김창룡씨 가족 제공]

“10년 뒤 팔순 잔치 해드릴게요.”

칠순 잔치 때 아버지께 한 말이다. 흰머리 하나 없이 건강하셨지만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어, 오래 오래 살아만 계시라는 바람으로 한 약속이었다.

우리 남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하다. 아버지는 건국대 재학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참전했다. 1957년 12월25일 어머니와 결혼, 과수 농사를 지어 2남3녀를 공부시켰다.

아픈 기억도 있다. 1979년 온양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갑작스런 겨울한파로 한해 과수 농사가 엉망이 됐다.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나(혜금)와 오빠(인수)는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몇 년 뒤 과수원을 팔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인주에 땅을 사 농사를 짓고 계신다. 농사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아버지는 마늘, 배추, 감자 등을 수확하면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행복해 하신다. 주말이면 아버지 밭일을 돕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모인다. 이 또한 아버지가 농사일을 놓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2남3녀 공부시켜 다들 제 구실할 수 있도록 키우신 것만으로 부족해 아직도 자식들 김장거리, 반찬거리 만들어주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새마을지도자 회, 이장 등 마을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봉사해 온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아산시 참전용사 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유공자 권익보호를 위해 애쓰시고 계신다.

큰 집, 작은 집 합하면 모두 13남매가 아버지의 팔순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식구들만 족히 150명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안 있으면 증손자를 보시게 될 아버지와 어머니. 앞으로 10년 더 사시면 구순 잔치, 20년 더 사시면 백순 잔치 열어드릴게요. 그때는 식구가 200명 이상으로 불어날 테니 더 큰 장소를 빌려야겠지요. 아버지, 어머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팔순 때 하는 이 약속도 꼭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셋째 딸 혜금이가.

정리=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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