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바둑은 고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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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2국>
○·이세돌 9단 ●·황이중 7단

제11보(133~146)=유공지출(有空之出)이란 말이 있다. 옛날 동네 기원에서 바둑 두던 어르신네들이 대마가 몰릴 때 이곳 저곳 찔러보며 “유공지출이여”하던 그 소리. 사는 수는 안 보이고 빈 구멍이 있으니 나가고 본다는 얘기다. 황이중 7단도 궁한 나머지 찌를 곳은 다 찔러봤다. 그러나 아직 한 군데가 남아 있으니 바로 139의 곳이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마지막 숨구멍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곳만은 아껴둔 채 필사적으로 사전 공작(133,135,137)을 한다. 137은 행마의 좋은 맥점. 그 다음 139로 찌르자 백도 감히 바로 막지 못한다(흑A가 선수라 B로 막으면 C로 끊긴다).

하나 140으로 늦춰도 백의 장대 같은 세력권을 돌파하기가 아득하다. 구경꾼들은 다들 “죽었다”고 한다. 한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143 살자고 했을 때 이세돌 9단이 곧장 목을 치지 않고 146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왜 ‘참고도’ 백1로 파호하지 않는 걸까. 흑이 2부터 유공지출로 뚫고 나오는 게 만만찮기 때문이다. 백이 7까지 바로 막는 것은 흑8의 묘수에 걸려든다. 단박에 승부 역전이다. 그렇다면 146은 무슨 의미일까. 느낌상 흑이 D로 받았다가는 대마가 진짜 사망하고 말 것 같은데 그렇다고 D로 뚫리는 것도 눈뜨고 볼 수 없다. 이럴 때 바둑은 고통 그 자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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