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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천재 공학자 브루넬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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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모든 과학기술 분야가 고도로 전문화돼 있는 우리 시대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엔지니어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1806~1859)은 터널·교량·철도·조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4월 9일은 근대 최고의 공학자 브루넬이 태어난 날이다.

브루넬이 뚫은 템스 강 하저터널은 지금도 런던 지하철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클리프턴 현수교의 설계도를 그리기도 했다. 자금 부족으로 교량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 브루넬은 높은 명성을 얻었고, 1833년 27세의 나이로 런던~브리스톨 간 ‘그레이트웨스턴 철도’ 건설의 책임자가 됐다. 3200㎞에 달하는 철도가 브루넬의 감독 아래 건설됐다. 이 정도만 해도 한 사람이 짧은 생애 동안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브루넬은 조선공학에서도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1838년 세계 최초의 대서양 정기 횡단 목제 외륜증기선 ‘그레이트웨스턴호’를 건조했다. 이어 세계 최초의 스크루 추진 철제증기선 ‘그레이트브리튼호’가 1845년 대서양 항해에 투입됐다. 이 배는 대서양보다 긴 노선에서는 연료를 추가 공급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브루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배는 ‘그레이트이스턴호’였다. 이 배는 당시 바다를 떠다니던 최대 선박보다 4배나 컸으므로 연료 보급 없이 세계를 일주할 수 있었다. 1858년 건조된 이 배는 1899년까지 세계 최대 선박이었다. 사진은 브루넬이 1857년 그레이트이스턴호의 거대한 쇠사슬 닻줄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브루넬은 자신이 선택한 모든 분야에서 지극히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공학자였다. 2002년 BBC방송이 ‘영국 역사의 대표 인물 100명’을 여론조사로 선정할 때 브루넬은 처칠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랐다. 브루넬이 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19세기 영국이 그의 비범한 창조력을 분출할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조건을 제공하는 부문이 공학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고, 그나마 배출된 과학인재 상당수는 의·치의학대학원 등으로 향한다고 한다.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이공계 직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수많은 ‘브루넬’이 자라날 여건을 마련해 줄 경세가(經世家)는 정녕 없는 것일까?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