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15. 제1회 ABC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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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1960년 로마올림픽 지역예선을 겸한 제1회 아시아농구선수권(ABC)대회에 출전했던 한국 대표팀. 앞줄 왼쪽 첫째가 필자.

1960년 로마올림픽이 열렸다. 이때부터 제도가 바뀌어 지역예선을 거쳐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올림픽 예선을 겸한 제1회 아시아농구선수권(ABC)대회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됐다. 한국 대표팀은 공군.해병대 선수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나도 당당히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어느 새 나는 국가대표팀 주전이 돼 있었다.

8개국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선전했으나 4위에 그쳐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 농구는 필리핀은 물론 대만.일본에도 열세였다. 패기를 앞세운 한국은 경기마다 초반엔 점수를 앞서며 선전했으나 항상 후반에 무너져 역전패를 당하곤 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폐막식장에 서 있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ABC대회 '베스트5' 발표 때 맨 먼저 내 이름이 불려진 것이다. 이 대회를 취재하러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투표를 했는데, 내가 표를 가장 많이 얻었던 것이다. 이때 뽑힌 베스트5는 우승팀 필리핀의 바디온.로이자가.로크와 한국의 백남정과 나였다. 한국은 4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5엔 두명이나 들었다.

이제 나는 아시아의 톱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이 영광이 팀 동료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베스트5 수상을 겸연쩍어하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깊이 간직했다.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술을 즐겨 마신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무렵 나는 경기를 앞두고 술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나는 과음해선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게 됐다.

ABC대회에서 돌아오자마자 종합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공군과 해병대가 다시 결승에서 맞붙게 됐다. 결승 전날 해병대 주장 천상희가 찾아왔다. 다방에서 얘기하다 그가 갑자기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나는 구미가 당겼으나 다음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술을 마실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그는 "군생활을 결산하는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서로 기념할 만한 추억을 만들자"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이 권유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 역시 상대팀 주전이었다. 같이 마셔야 공평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자정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셔댔다. 나는 누가 술값을 냈는지도 모를 만큼 취한 상태에서 다음날 코트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그와 헤어졌다.

다음날 결승전은 공군 체육관에서 열렸다. 홈코트였다. 참모총장을 비롯한 공군의 모든 장성이 관중석에 앉아 우승 순간을 기다리며 응원했다. 정신은 말짱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슛이 빗나갔다. 노마크에서 던진 슛도 림을 튕겨 나왔고, 레이업 슛은 번번이 블로킹을 당했다.

천상희는 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5반칙으로 퇴장 당하며 내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뿔싸!" 나는 '술 먹이기 작전'에 당한 것을 눈치챘다. 결국 우승컵은 해병대의 품으로 날아갔다. 차라리 나도 그처럼 일찌감치 퇴장 당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공군은 나 없이 경기를 치르기 위한 작전을 세웠을 것이다. 끝까지 "김영기의 컨디션이 곧 좋아지겠지"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 경기를 망친 셈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대회에서 나는 공군에 우승컵을 안겨주고 제대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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