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어글리' 아파트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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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최정화(19기 주부통신원)

쓰윽 쓰윽…. 낯설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청소 아줌마의 힘찬 손놀림이 보였다. 계단 모서리에 붙인 청동으로 된 미끄럼 방지턱을 반들반들하게 닦고 있었다. 아줌마는 푸념하듯 나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요즘 사람들은 왜 이리 공중도덕이 없는지 원. 강아지를 키우면 뒤처리도 알아서 해야지, 강아지가 계단에 오줌을 누게 내버려 두면 어쩌누, 청동이 파랗게 녹슬어 닦이질 않어."

가까이서 보니 청소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 만큼 나이 드신 분이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온몸이 땀에 전 할머니를 뒤로한 채 올라오는 내 발밑으로 금속 방지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차마 밟기 민망할 정도로.

어디 강아지 오줌뿐이랴. 해질녘이면 애완견 산책을 시킨다며 오물을 여기저기 굴러다니게 한다. 휴지나 비닐을 들고 다니며 이를 처리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선진국 같은 생활을 누리면 뭐하는가. 의식이 선진화되지 못하면서 말이다.

요즘엔 엘리베이터 안에서 쾨쾨한 냄새가 날 때도 많다.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나는 물을 뚝뚝 흘리기 때문이다. 아파트 생활은 나 아닌 공동체의식이 더욱 필요한 곳이거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깊숙이 들어 있는 미숫가루를 찾아 물에 탔다. 시원하게 들이켤 할머니의 얼굴을 생각하며 얼음도 동동 띄웠다. 다음날 아침, 운동부족으로 살찐 아들에게 평소 계단 오르내리기를 권하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재원아, 오늘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왜요? 엄마."

"그냥."

어쩌면 어제 힘들게 닦은 할머니의 계단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반짝거리게 지켜주고 싶은 맘인지도 모르겠다.

최정화(19기 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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