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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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기억력이 좋으신 건가요. 아니면 특정하게 각인이 된 건가요?" 본관 건물 옆을 지나 뒤편 교사가 보이는 지점으로 접어들 때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머지 촬영팀들이 승합차를 타고 한껏 느린 속도로 그녀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각인이 아니라 끌로 판 것처럼 깊이 아로 새겨지는 기억들이 더러 있어요. 이미랑 선생님이 들고 다니던 녹음기에는 물론 수업을 위한 테이프가 들었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 녹음기에서 다른게 흘러나오는 것도 들을수 있었소. " "다른거라뇨?"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팝송이나 샹송, 그런 것들이었소. " "아…그래요, 그런 것이었군요. 그럼 교실로 들어가면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아지겠네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을 거요. 어느날, 수업시간에 이미랑 선생님이 내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셨죠?" 깜짝 놀라는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그날은 몸이 아프다며 교실로 들어오자 마자 나에게 다가와 자습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난 그 선생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앞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자습을 하라고 말하고는 자습 감독처럼 우두커니 서서 이미랑 선생님만 지켜보았죠. 정말 몸이 많이 아픈 사람처럼 그녀는 고개를 폭숙인 채 꼼짝도 하질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난 그녀의 어깨가 아주 가늘게 들먹이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어요. 고개를 숙인채 남 모르게 울고 있었던 거죠. 아무튼 그날 그 순간의 햇살과 교실 풍경과 끈끈한 기류 같은 게 나에게는 단 몇분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거요. " "그럼 그때 이미랑 선생님이 왜 울었는지를 이 선생님도 모르고 계시는 건가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녀는 물었다.

그래서 나도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비둘기 몇 마리가 본관 건물 지붕에서 푸드득 날아 올라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물어보질 못했으니 알 도리가 없죠. 아무튼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뒤에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으니까,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을 할수 있을 뿐이요.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카메라 앞에서 절대로 언급하지 않을거요. 혹시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당사자가 이프로그램을 보게 될 경우…그런 것도 나로서는 무시할 수가 없는 거요. 어쩌면 볼거라는 기대감과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아무튼 그런 걸 말하고 싶지는 않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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