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4대증권사 '야마이치' 도산 파장…한국에 단기외채 독촉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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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 4대 증권사인 야마이치 (山一) 증권의 도산은 단순히 금융기관 하나가 무너졌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본 금융시스템 전체의 붕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24일이 공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무담보.무제한의 특융을 풀기 시작한 것이나 일 정부가 불량채권 해소에 국민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공적자금을 동원한 것도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여론의 비난을 무릅쓴 초강수를 동원해서라도 금융 불안의 전파 (傳播) 를 하루 빨리 차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금융은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위기가 시작된 지난 7월부터 불안한 기미를 나타냈다.

일 금융기관들이 동남아에 거액을 물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도쿄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동남아 통화위기 바이러스에 일본이 감염된 것이다.

1천2백조엔 (약 9천7백8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개인 금융자산과 강도 높은 금융개혁 방침도 외국인들의 돌아서는 발길을 잡지 못했다.

일본의 금융불안은 한국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과 함께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이웃 경제대국인 일본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은행 관계자는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은 유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며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의 단기 외채중 독일 (1백억 달러).프랑스 (89억 달러).영국 (56억 달러) 등 유럽계 금융기관의 비중이 50%를 넘는 반면 일본은 35%에 불과하다" 고 주장했다.

일본도 금융불안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만큼 한국이 유럽쪽에 먼저 상환유예를 요청하라는 것이다.

일본의 금융불안은 현재 진행중인 금융개혁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부실 금융기관 도태를 겨냥한 조기 시정 조치의 발동을 앞두고 일 금융계는 요즘 부실채권을 축소하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5백72조엔 (5조2천억달러)에 이르는 대출자산중 향후 6개월 이내에 10%가 회수될 전망이다.

돈줄이 조여짐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과 중소기업들은 최근 자금난이 극심해면서 연쇄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또 내년 4월부터 일본의 외환 거래가 자유화될 경우 초 (超) 저금리와 금융 불안을 피해 앞으로 수년내에 1백조엔 이상의 개인.법인 금융자산이 해외로 도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왔던 미국도 산요증권.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에 이어 야마이치증권까지 무너지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일본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2천9백10억달러어치의 미국 채권 때문이다.

이는 미국 전체 발행물량중 5%에 해당한다.

일 금융기관들은 미 금융기관과 달리 상당부분의 자산을 주식으로 매입해둔 상태다.

경영이 악화되면 주식보다 그래도 이익을 올리고 있는 미 채권을 매각하는 수순을 택할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뉴욕 금융시장은 금리 급등과 주가 폭락이라는 파편을 맞게 된다.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이 의회에서 "아시아 금융위기가 일본에까지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야말로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는 관건" 이라고 증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금융불안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미 정부는 강력한 지원 사격과 함께 일 정부에 대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도록 압력을 가할 전망이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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