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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무대와 연기 볼 만, 귀에 남는 음악 있었으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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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06면

요즘 유행하는 ‘무비컬(영화 원작 뮤지컬)’이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각색한 작품이니 스토리가 주는 긴장감은 없다. 관객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맛깔스럽게 풀어 가느냐. 관객은 그 ‘어떻게’에 주목한다.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5월 17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작이다. 극 전개와 노래, 무대 구성과 안무 등이 빈틈없이 꽉 짜였다. ‘극소심 소문자 A형 남자’ 대우와 연쇄살인자 미나의 사랑. 독특한 캐릭터와 엽기적인 상황이 분위기 딱 맞춘 노래와 코믹한 연기 속에 녹아 있다. 무대 장치의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무대 뒷벽을 앞뒤로 움직이며 미나의 아파트와 복도ㆍ엘리베이터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 기간이 길었다. 기획에서 정식 공연까지 걸린 시간이 꼬박 30개월이다.뮤지컬의 각본은 미국 뉴욕대 예술대학원 뮤지컬극작과 출신인 강경애씨가, 곡은 강씨의 대학원 동기인 윌 애런슨이 썼다. 하버드대에서 작곡을 공부했던 애런슨은 이번 작품을 위해 한국 가요와 트로트 등 엄청난 양의 한국 음악 CD를 들었다고 한다.

대본은 영어로 먼저 쓰였다. 글로벌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시도였다. 반응은 괜찮았다. 2007년 4월 국내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미국 베링턴스테이지컴퍼니(BSC) 뮤지컬시어터랩 발표작으로 선정됐다. 동시에 국내 무대에도 섰다. 2007년 4월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디벨로프 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단 4회 공연이었는데, 전회 매진될 만큼 인기를 누렸다.

정식 공연은 지난달부터다. 대우 역에는 뮤지컬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신성록과 뮤지컬 ‘공길전’과 ‘김종욱 찾기’ 등의 김재범이 더블 캐스팅됐다. 또 미나 역은 뮤지컬 배우 방진의ㆍ손현정이 번갈아 맡는다. 미나에게 죽임을 당한 홍규와 계동 역 등을 담당한 ‘멀티맨’들의 활약도 볼 만하다. 이들은 김치냉장고 귀신 역도 맡아 극을 이끌어 가는 화자 역할을 한다.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수작임은 분명하다. 소극장 뮤지컬인 만큼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 귀에 쟁쟁거리도록 남는 음악이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에 반한 관객이 진심을 다해 박수를 치는 동안 분명 인상적이었던 25곡의 음악이 스르르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또 하나. 너무나 가볍게 다뤄진 살인이 마음에 걸릴 수도 있겠다. 칼을 휘두르고 시체를 도막 내는 장면조차 경쾌하게 다뤄졌으니 인명 경시 풍조 운운할 법하다. 하지만 넘어가라. 장르는 어디까지나 ‘로맨틱 코미디’다.

5월 17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가격 4만5000원. 문의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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