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스티브 잡스 ‘탁월한 냉혈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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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스티브 잡스의 신의 교섭력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이수경 옮김
에이지21, 236쪽, 1만 2000원

인간사의 ‘나쁜 남자’처럼 기업사의 ‘나쁜 최고경영자(CEO)’도 많다. 이 책의 지은이는 대표적인 나쁜 CEO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지목했다. 잡스를 천재적인 ‘창조형 CEO’로만 알고 있었던 독자라면 적잖이 놀랄 대목들이 많다.

"상황이 불리하면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굴기 일쑤다. 남의 아이디어나 공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챈다. 창업 때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영예를 모두 누리는 것은 아니다’며 스톡옵션을 나눠주지 않는다. 교활하게 술수를 써서 자기 눈밖에 난 이사들을 몰아낸다.” 저자는 잡스가 이런 나쁜 짓을 상당부분 했다고 꼽았다. 애플이 상장됐을 때 잡스는 창업동지들에게 스톡옵션을 주지 않아 내부 불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잡스는 꿈쩍하지 않았다. 창업 때 있었다고 모두 스톡옵션을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사원과 그렇지 않은 사원이 있다는 논리다. 오죽하면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톡옵션을 받지 못한 사원들을 딱하게 여겨 자신의 주식을 나눠줬을까. 이 때문에 창업자간 갈등이 증폭됐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하지만 잡스는 CEO로서 과거에 얽매여 판단이 흐려진 적이 없다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끔찍이 싫어하는 빌 게이츠와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자금지원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잡스는 세계적 히트상품인 아이팟을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CEO는 경영성과로 말한다고 한다. 이런 잣대로도 잡스가 나쁜 CEO일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보면서 그의 훌륭한 리더십과 협상력을 조망한 책이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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