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세탁 → 조세 회피처 → ? “단순 투자”치곤 돈 흐름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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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모(36)씨에게 송금된 500만 달러에 주목하는 것은 수상한 흐름 때문이다. 비정상적 계좌이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을 전형적인 ‘자금 세탁’이라고 판단한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한 ㈜봉화의 사무실이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내 연립주택. 최근 별다른 사업 추진 실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봉근 기자]


특히 이 돈은 자금 세탁을 거쳐 조세회피처에 있는 해외 창투사로 이동했다. 검찰이 “단순한 해외 투자”라는 연씨 측의 설명을 의심하는 근거다. 500만 달러의 주인이 연씨가 아닌 제3자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금 세탁 정황=박연차 회장 측이 송금한 500만 달러의 흐름은 이미 지난해 국세청 조사 때 파악됐다. 하지만 그 당시엔 폭발력이 감지되지 않았다. 국세청 조사팀은 태광실업이 제출한 자금 거래 자료에서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타나도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연씨가 세운 창업투자회사다. 지난해 11월 국세청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도 처음엔 연씨가 개입된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검찰이 돈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자금 세탁 정황이 드러났다. 태광실업의 홍콩 법인인 ‘APC’에서 나온 돈은 홍콩에 있는 박 회장 소유의 페이퍼컴퍼니인 ‘JS아시아’ 계좌로 이동했다. 돈의 출처를 한 번 세탁하려 한 것이다. 이후 돈은 버진아일랜드의 회사로 옮겨졌다.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다. 송금 대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전형적인 자금 세탁의 냄새가 난 것이다. 올 초 계좌의 주인이 노건평씨 사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더욱 구체화됐다.

박 회장은 “화포천 개발 사업에 쓰라는 취지였다”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고 줬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 측이 거액을 건네받기 위해 조카사위를 등장시킨 것이라는 의심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돈을 건넨 시점도 미묘하다. 만약 연씨의 회사를 거쳐 노 전 대통령 측에 돈이 전달됐다면 그 시점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연씨가 500만 달러를 받은 시점이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용처 조만간 드러날 듯=검찰은 해외 계좌 추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조만간 홍콩으로부터 2차 추적 결과를 받게 된다. 연씨도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연씨 측 대리인인 정재성 변호사는 2일 “단순한 해외 투자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4개국에 돈의 절반 정도가 투자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처에 대해서는 “투자회사의 투자처는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계좌 추적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500만 달러 전달에 개입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정 전 비서관은 2007년 말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박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을 위한 사업에 50억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할 때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씨 회사에 500만 달러가 송금된 것이 당시 논의의 결과였는지는 향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김승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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