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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관광성 외유는 잘도 나가면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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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정치권은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을 놓고 3년 넘게 정치 공방을 벌였다. 그러다 2007년 12월 28일에야 통과시켰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될 수 있었던 건 여야 의원들이 함께한 해외 출장이 계기가 됐다. 소관 상임위였던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2007년 한 해 동안 미국·영국·일본·이탈리아 등을 다니며 방송통신융합 환경과 각국의 IPTV 관련 제도 등을 둘러봤다. 당시만 해도 한국보다 기술은 한 수 아래였지만, 법이 제때 통과된 덕분에 앞서나가는 선진국들의 모습에 자극 받은 의원들은 그제서야 입법에 속도를 냈다.

시행착오는 한 번이면 족하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NAB 전시회를 둘러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자세가 그렇다. 이 전시회는 매년 4월 전미방송협회(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가 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미디어 박람회다. 미디어산업의 최신 트렌드와 미래 방향을 공부할 수 있는 경연장이다. 잘만 활용하면 미디어법을 둘러싼 지금의 불필요한 논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경비를 지원해 줄 테니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이 전시회를 둘러보고 오라고 문방위에 제안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문방위는 참가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주당 쪽은 “YTN 노조위원장 구속, MBC PD수첩 제작진 체포 등 중요한 현안이 많다”고 거절 이유를 설명했다. 한나라당 측은 “회기 중의 해외 출장에 대한 여론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외유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은 건 관광·선심성 출장이 잦은 때문이다. 견문을 넓히고 연구하는 업무성 출장을 탓할 시대는 아니다. 더구나 문방위원 전원이 가는 것도 아니고 여야 의원 4명과 미디어발전국민위원 6명을 합쳐 10명이 대표로 다녀오는 일정이라 국회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일도 아니다. 문방위는 18대 국회에서 회의만 열리면 싸우는 상임위로 유명하다. 미디어발전국민위조차 운영 방식을 놓고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우물 안에서 ‘우리끼리’ 다투는 사이 전 세계 미디어산업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선승혜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