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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수록 브랜드 파워 더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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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불황기에는 가격이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관심사다. 기업은 싼 가격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려 하고, 소비자는 절약하려 애쓴다. 그렇다고 ‘싸게 더 싸게’를 외치는 저가 마케팅이 정답일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리핀콧의 릭 와이즈(사진)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불황에 대처하는 기업의 자세에 대해 들었다.

-소비 침체기에 기업은 어떤 전략을 펴야 하나.

“무조건 싸다는 ‘최저가격’ 메시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리적인 소비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건을 싸게 사서 아낀 돈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즉 돈에 대한 가치를 전해야 한다. 최근 매출이 크게 뛰고 있는 미국의 대형마트 월마트는 이곳에서 쇼핑하면 얼마만큼 절약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광고한다. ‘월마트에서 산 씨리얼을 5인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더 먹으면 아침을 사먹을 때보다 연간 수백 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돈으로 가족 휴가를 떠나고, 자녀 교육에 더 투자하라고 제안한다. 절약에 따른 보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고객들은 싼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는 합리적인 소비자로 불리길 원한다. 불황기에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키워드는 ‘값싼(cheap)’이 아니라 ‘합리적(smart)’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라는 뜻인가.

“가격은 기본이고, 그 외의 가치를 더 얹어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선보인 ‘실직하면 차를 도로 받아준다’는 프로모션은 큰 히트작이다. 독특한 가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첫째로 소비자가 처한 상황을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해 주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기업이 단순히 현재의 기회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는 인상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둘째로 값이 싸다는 데 더해 ‘유연성’이라는 가치를 제공했다.”

-어떤 기업이 위기에 성장하는가.

“소득이 줄면서 소비자들은 소비 패턴을 바꾼다. 새로운 선택을 시도한다. 예컨대 ‘평면TV를 이렇게 비싼 값을 주고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기존 브랜드를 외면하고 낯선 브랜드로 옮겨가는 식이다. 최상위급 금융 회사들이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1위 브랜드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믿음이 많이 깨졌다. 외면을 받던 중소은행들이 성황이다. 브랜드 간 서열이 재정비되는 시기다. 경쟁사의 점유율과 고객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기회다. 맥도날드가 스타벅스 커피 고객을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기 침체기에 브랜드에 더 투자해야 경기 회복 이후에 성장한다.”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은 그만큼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건 아닌가.

“물론 기초체력은 있어야 한다. 어떤 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급급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가치’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최근 조사해 보니 소비자들은 신뢰성·장수·보수적 같은, 얼마 전까지 당연시했던 브랜드의 속성에 관심을 보인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불경기에 공략층을 수정해야 하는가.

“소비가 위축되면서 당장 매출이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싼 제품을 내놓으면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된다. 오랜 시간 걸려 쌓은 이미지는 한번 망치면 회복하기 힘들다. 지금 당장 이 제품을 살 돈이 없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브랜드로 남아야 한다. 저가 상품 출시로 매출을 확보하고자 하면 새로운 독립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가격 공세를 펴는 대신 제품의 보증 기간을 연장하는 혜택을 주는 것처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활용하는 게 좋다. ”

글=박현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리핀콧(Lippincott)=브랜드 전략 컨설팅 및 디자인 회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컨설팅 업체 중 하나로 기업 이미지(CI) 프로그램을 최초로 만들었다. 1943년 미국 뉴욕에 세워졌으며, 86년 경영 컨설팅 기업 올리버와이먼에 인수돼 이 회사의 브랜드 컨설팅 사업 부문이 됐다. 별도로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다. 올리버와이먼의 지난해 매출액은 15억 달러(약 2조1000억원). 리핀콧은 삼성을 비롯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씨티그룹·골드먼삭스·IBM·월마트·맥도날드 등 3000여 고객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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