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완의 록 앤 론]'카니발'- 길지 않았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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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그들은 태생이 너무 고귀하여 어쩔 수 없이 높은 곳에 있는 귀족들 같다.

그들은 손길이 섬세하여 만들어 내는 것마다 질박한 것은 없고 어쩔 수 없이 격조 높고 우아하다.

낮은 것들에 대한 생각도 있고 관심도 있고 그걸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함도 지니고 있어서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늘 뜻깊지 않을 수 없다.

또 남들이 울긋불긋하고 촌스러운 무대의상을 입고 춤이나 출 때, 그들은 20년대 시카고 풍처럼 경박하고 화려하지만 어딘지 중후한 멋을 풍기는 수트를 입고 뮤직 비디오에 등장한다.

그들은 망친 인간들이 아니라 어떤 소명에 따라 천박함의 세계에 몸을 던진, 각별한 재능과 보통이 아닌 뜻을 지닌 인간들 같아 보인다.

한쪽은 멍청한 대중에게 날카로운 메시지를 꽂는 강렬한 개성의 '왼손잡이' (패닉) 고 한쪽은 깊이 있고 섬세한 '기억의 습작' (전람회) 을 그려내는 귀공자다.

선풍적인 만남. 왜 '카니발' 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을까. 그들은 하여간 만나서, 스타일과 의미와 기호 모두를 소유한다.

보수적이고 고전적인가 하면 도발적이고 전위적이다.

음악 스타일이 그렇다.

고전적인 스윙인가 하면 거기에 최신판 애시드 재즈 (힙합과 싸구려 취향이 결합된 재즈) 냄새가 난다.

가설적으로, 그들은 완벽하다.

멋진 가수들이지만 입학 성적까지 좋았을 그들! 그 가설적인 완벽함에 도취되는 순간, 소녀들은 디제이 덕의 버르장머리 없음을 즐기는 때와는 전혀 다른 상태의 정서 속에 있다.

부러움과 시기심과 감탄,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까지 품고 바라보는데 카니발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은 높은 언덕 위에 있거나 깊은 성 안에 있다.

아래에서 그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그 가설적인 완벽함과 배치되는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현실을 끊임없이 떠나 비현실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양된다.

카니발이 현실에 관한 어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노래에 실어 내려보내든, 그걸 듣는 아이들은 그 거울을 통해 현실의 추함을 확인하고 현실을 지우면서, 동시에 현실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유보시키며 그 의미심장함을 수용한다.

이들은 결국 환상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지우도록 만드는 한 장치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은 아름답고 고귀한 참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참뜻이 끝없이 유보된다는 데 있다.

그 우스꽝스러운 역설이 성립되는 동안 이들은 뭘 한 것일까?

만났고, 노래 만들었다.

따지고 들자면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만남에 의해 배반당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서 만났느냐, 상업적인 공간에서 만났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만남도 그런데서 이루어지면 뜻깊기가 쉽지 않다.

그런 걸 예상했다면, 서로간에 거절했어야 옳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빨려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을까?

요새 이들은 음반 판매량에서 단연 1위를 달린다.

어디가나 1등만 하던 친구들에게는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만나자마자 헤어지려 한다.

멋진가? 마치 카니발은 금방 끝나는 비현실의 공간이라는 걸 환기시키려는 듯이. 이적은 패닉을 계속하겠다고 하고, 김동률은 유학가겠다고 한다.

어차피 현실이 아닌 카니발이 싫었나. 설마 애초에 '돈 좀 벌고 찢어지자' 는 생각을 가지고 만났던 건 아니었겠지.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약력>

67년 서울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석사) .시인. 대중음악평론가.

저서 '재즈를 찾아서' (문학과 지성사) .역서 '록의 시대' (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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