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 열고 하루 만에 휴업하는 한심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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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국회의원들이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임시국회 첫날인 어제 국회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듣고,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법안을 처리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했다. 하지만 둘째 날인 오늘 국회엔 별다른 일정이 없다. 국회를 열고 하루 만에 휴업이다. 3일에도 일반 상임위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와 법사위 공청회만 예정돼 있을 뿐이다. 다음 주엔 5일간 대정부 질문이 이어진다. 상임위 활동은 일러야 그 다음 주인 13일에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이렇게 한가할 상황이 아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일을 해야 한다. 국회가 법안을 만들어줘야 정부의 정책이 구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국회에선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예산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정부 여당이 내놓은 28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과 민주당이 만든 독자안 13조8000억원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액수만 문제가 아니라 예산안의 내용 면에서도 여야 간엔 시각의 차이가 크다.

이런 격차를 해소하려면 각 상임위에서부터 여야 간 논의와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 상임위별로 추린 결과를 가지고 예산결산위에서 다시 심의해 본회의에 넘겨야 한다. 추경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29일로 잡아 놓았을 뿐 여야 간에 협상과 논의를 서두르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늘 시간이 부족하다면서도 막상 시간이 있을 때는 회의를 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29일 재·보선 등 다른 정치적 현안 탓이 크다. 박연차 리스트에 따라 여야 구분 없이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재·보선 공천과 관련해 여야 없이 내홍이 크다. 박연차 리스트는 해당 정치인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문제고, 재·보선은 당내 역학관계를 좌우할 사안이기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임시국회를 이런 외적인 변수에 휩싸여 떠내려가게 해선 안 된다. 임시국회가 소집되자마자 사실상 휴업에 들어가게 된 것은 벌써 이런 외적 변수에 휘둘리고 있다는 징표다. 더욱이 야당에선 검찰의 박연차 수사와 관련해 벌써부터 특별검사제와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한창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국회가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종결 이후 국회가 다시 나설 수 있다. 국회를 열었으면 일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