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되레 반갑다” 중저가 패스트패션 몸집 불리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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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경기침체 탓에 모두가 투자를 줄이는 가운데서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몸집 불리기’ 경쟁을 펼치는 업계가 있다. 바로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업계다. 패스트푸드처럼 그때그때 유행하는 스타일로 옷을 만들어 싼값에 내놓는 이들에겐 불경기가 오히려 반갑다. 명품 매장에서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이 중저가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 규모 면에서 의류업계 최강자는 미국의 갭이다. 바나나리퍼블릭·올드네이비·갭 등의 중저가 브랜드를 보유한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45억 달러. 매장 수만 3100개에 이른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조만간 이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등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왕좌를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해 안에 수백 개의 신규 매장을 낼 계획이다. 지금이야말로 패션업계의 판도를 바꿀 절호의 찬스라며 잔뜩 벼르고 있다.

불황을 오히려 전세 역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글로벌 패스트패션 업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최신 유행의 제품을 중저가에 파는 이들 매장엔 명품족의 발걸음도 속속 몰리고 있다. 위에서부터 H&M의 영국 런던 매장, 갭의 미국 뉴욕 매장, 자라의 프랑스 파리 매장. [파리·뉴욕·런던 블룸버그]


◆공격적인 매장 확대=지난달 26일 자라를 만드는 인디텍스가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다. 73개국 매장에서 141억 달러(약 19조48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매출 145억 달러를 기록한 갭에는 조금 못 미쳤다. 그러나 WSJ은 “갭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감소한 반면, 자라는 10% 증가했다”며 “조만간 순위 변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갭의 부진은 소비 경기가 확 죽은 북미·유럽 지역에 지나치게 집중한 탓이 크다. 갭은 매장 수가 3100개에 달하지만, 진출한 곳은 6개국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자라는 73개국, H&M은 36개국에 진출해 있다. 그만큼 위험이 분산돼 있는 셈이다. 이들 업체는 매장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자라는 올해 370~450개, H&M은 225개의 매장을 더 낼 계획이다. 반면 갭은 올해 50곳 정도의 신규 매장을 열 계획이다.

◆문제점도 있어=H&M은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불경기에 대단한 성과지만 세후 이익은 오히려 12% 감소해 빛이 바랬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동유럽에 대거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고 있는 자국 은행들 탓에 스웨덴 크로나화 가치가 급락한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공격적인 매장 확대도 문제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생산부터 유통, 재고 관리까지 모두 본사에서 관리하는 패스트패션 업체 특유의 전략으로는 급격히 늘어나는 해외 매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WSJ은 의류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빌려 “인디텍스의 현재 확장세를 고려할 때 지금의 물류 시스템은 2012년께 한계에 이를 것”이라 고 분석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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