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Simple ! 24살 테트리스에서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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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테트리스(tetris)는 얼핏 보면 룰이 단순하고 요즘의 현란한 게임에 비해 그래픽이 촌스럽다. 그럼에도 거의 사반세기 동안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뭘까. NHN과의 업무 협의차 방한한 파지노프는 3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간의 뇌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교한 수학적 원리에 게임의 의외성을 결합시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짠 기본 디자인이 지적 재미를 찾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테트리스엔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의 다양한 특성이 녹아 있다.

테트리스를 개발한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31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단순하지만 탄탄한 기본기

테트리스의 룰은 단순하다. 위에서 떨어지는 7가지 모양의 블록을 조정해 빈 칸을 메운다. 가로 라인이 다 차면 줄이 없어지면서 점수가 올라간다. 처음 해보는 사람도 쉽사리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 NHN의 서현승 캐주얼사업부장은 “테트리스는 한게임이 서비스하는 게임 중 사용자층이 가장 넓고 분포도 고르다”고 전했다. 단순함은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끄는 정보기술(IT) 기기의 공통된 특성이다. 닌텐도 게임기인 닌텐도DS와 위(Wii), 애플의 아이팟·아이폰도 단순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단순해 뵈는 테트리스 안엔 고도의 수학 원리가 숨어 있다. 응용수학 전공인 파지노프는 고대 로마에 기원을 둔 블록 맞추기 퍼즐 ‘펜토미노스’에서 착안했다. 파지노프는 각 블록을 구성하는 정사각형 수를 펜토미노스와 달리 5개가 아닌 4개로 줄여 7개 블록이 만들어지도록 했다. 게임 이름을 그리스어 ‘4’를 뜻하는 테트라에서 따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조니 A 밀러 교수는 1950년대에 “인간이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가짓수는 7개”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통신업체인 AT&T가 전화번호를 7자리로 만든 것도 이 설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파지노프는 ‘기하’와 ‘확률’ 원리를 적용하면서도 블록 수를 기억의 한계인 7개로 줄여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걸 피했다. 아울러 한 스테이지(판)가 끝나는 시간을 몇 분 단위로 제한해 속도감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기호에 부응했다. 유사한 재미를 주는 바둑·장기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무한 변용, 높은 사회적 평가

단순하면서 탄탄한 기본 룰 덕분에 테트리스는 조작 버튼과 스크린이 있는 IT기기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 온갖 게임기는 물론 시계·계산기·휴대전화·PDA까지 진출한 이유다. 당연히 수많은 아류작도 나왔다. 그중엔 세계적으로 히트한 게임이 적잖다.

한편으론 다른 게임의 장점을 과감히 수용해 진화를 거듭했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용자가 경쟁하는 대전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테트리스는 선정적·폭력적 게임이 판치는 요즘, 가족 모두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착한 게임’의 전형이다. 뇌를 적절히 자극해 지능 개발과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테트리스도 다른 히트 게임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몰입을 유도하는 것이 폭력적 영상이나 과도한 경쟁이 아닌, 논리적 두뇌 사용과 정리 욕구 충족인 점이 다르다. 게임분석전문가 히라바야시 히사카즈는 저서 『게임대학』에서 “테트리스는 인간 심리를 잘 파악해 원초적 놀이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평했다.


이나리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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