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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자와 이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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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991년 10월의 일이다. 물러난 가이후 도시키 일본 총리의 후임을 뽑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미야자와 기이치를 비롯한 세 명의 정치인이 출마했다. 유세장을 누벼야 할 후보자들이 어느 날 한 정치인의 개인 사무실로 줄줄이 불려갔다. 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의 회장대행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면접심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72세의 베테랑 미야자와는 아들뻘인 49세 오자와의 면접시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다. 오자와가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너무 젊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는 50대 총리도 젊다던 시절이었다.

1년8개월 뒤 미야자와를 끌어내린 것도 오자와였다. 소선거구제 도입을 둘러싸고 미야자와와 대립한 그는 자신의 동조자를 규합해 야당과 손잡고 총리 불신임안을 가결시켜 버렸다. 이 사건은 자민당이 총선에서 패배해 창당 38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하는 정변의 도화선이 됐다. 자민당을 뛰쳐나간 오자와는 8개 군소 야당을 규합해 연립정권을 만들어냈다. 간판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지만 정국의 주역은 역시 오자와였다.

이처럼 오자와는 총리를 만들고, 총리를 끌어내린 이력이 몇 차례 있다. 마음만 먹었더라면 자신이 총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늘 ‘킹 메이커’의 역할에 머물렀다. 연부역강(年富力强)한 그는 언제든 기회가 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야권을 전전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건 20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올 9월 이전에 치러질 총선에서 오자와가 이끄는 민주당이 승리할 확률은 99%라고 점쳐져 왔다. 자민당이 워낙 죽을 쑤고 있는 탓이다. 오자와는 일본에서 본격적 의미에서의 첫 정권교체를 실현시킨 인물이 되리란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오자와는 총리와 인연이 먼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이번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그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오자와의 비서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자와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여론은 이미 사임을 재촉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그가 알았건 몰랐건 일본에선 정치생명이 끝나는 사안이다. 이처럼 일본에는 금전 스캔들이 정치의 물줄기를 바꾼 일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시기, 한국 정가에도 검찰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많은 정치인이 불안에 떨고 있다. 기업인이 제공한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란 점도 일본과 유사하다. 역사인식 문제로 다툴 때는 물론이요, 하다못해 축구·야구에서 맞붙어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나라이거늘 정치인들의 행태는 왜 그렇게 닮아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