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돈만 퍼부으면 노벨상 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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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학기술처가 야심적으로 추진중인 '창의적 연구 진흥사업' 을 둘러싸고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이 사업은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방 일색 연구에서 창조력 넘치는 연구로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를 바꿔 장차 노벨상감이 될만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11일 과제 선정 결과가 발표되면서 "돈만 쏟아 부으면 독창적 연구결과가 나오고 노벨상도 받게 되느냐" 며 이 사업의 발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적 내용이기도한 '한 과제당 연간 5억원 전후의 연구비 최고 9년 지원' 이란 대목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사실 이런 규모의 연구비 지원은 연구 선진국인 미국.일본 등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예로 한국 여자 과학자가 포함돼 최근 화제가 됐던 미 행정부의 '신진 우수 연구자상' 은 미국내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수상자들에게 주어지는 연구비 지원 액수는 5년간 연 10만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이번 사업을 마치 군사정권 시대의 엘리트 체육정책처럼 보는 시각도 있다.

유능하고 똑똑한 소수의 과학자를 선발해 한번 세차게 밀어붙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깔린게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독창적인 연구는 과학의 저변이 넓고 튼튼할 때 그 결과로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거액의 연구비로 창의성을 유도하기보다 기초과학 등에 지원폭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많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노벨상을 받은 사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간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현재 몸담은 대학.연구소를 떠나 다른 연구기관으로 합류하는 것이 가능하고, 기존의 연구를 완전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등으로 인해 창의력이 있으면서도 합류하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이번 사업의 문제다.

물론 이번 사업이 국내에 만연한 모방연구 분위기를 일거에 쇄신하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브라질이 축구 강국이 된 것은 몇몇 축구 엘리트에 대한 집중 지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에 조성된 '축구하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과기처는 이번 사업 추진에서 드러난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현장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창의 연구가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김창엽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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