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룸살롱서 휘청대는 청와대 기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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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파견됐던 청와대 행정관이 관련업계 관계자에게서 룸살롱 접대를 받고 여종업원과 함께 모텔에 투숙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술자리에는 또 다른 행정관도 같이 있었다. 얼마 전엔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씨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겨우 집권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명박 청와대’의 기강이 흔들리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모든 면에서 공직사회의 중추(中樞)다. 기능과 파워도 그렇지만 충원되는 인사의 자질이나 그들의 언행도 그러해야 한다. 1970년대 이래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에는 각 부처의 엘리트 공무원들이 파견됐다. 일반 부처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직급도 엄격했다. 비서관은 1~3급, 행정관은 4~5급이었다. 이런 관행은 노태우 정권까지 지속됐다. 청와대의 이런 질서는 그러나 김영삼 정권 때부터 흔들렸다. 집권에 공이 큰 가신 그룹이 대거 진입하면서 직급 인플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더 심해졌다. 공직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인물이나 386 투사들이 높은 직급을 받으면서 청와대를 점령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대다수 비서관은 1급이며 행정관의 직급도 일반 부처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계급을 포함한 청와대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도덕적 기강도 함께 동요했다. 노무현 정권만 보더라도 수석비서관을 지낸 이강철·박정규씨, 비서관을 지낸 정상문·정윤재씨가 각종 불법자금 의혹 사건에 연루돼 사법 처리를 받았다. 행정관이 부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추부길 전 비서관 사건이나 행정관의 접대·성매매 의혹 사건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몇몇 정권을 통해 흐트러진 청와대의 분위기를 보면 단순한 개인적인 일탈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집권의 잔치 속에서 비서관·행정관들은 높은 감투를 받았고 새로 등장한 청와대 부서는 힘을 가졌다. 바로 그 지점에 사악한 부패의 망령이 춤추곤 했다. 지금의 청와대도 ‘권력 즐기기’ 또는 ‘흥청망청’ 분위기가 퍼져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훑어봐야 한다. 경제위기 한가운데서 벌어진 행정관들의 일탈은 청와대 기강이 전반적으로 느슨해진 것을 나타내는 징표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근무자는 윤리·도덕적 측면에서도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공직사회의 사표(師表)여야 한다. 서열은 엄격하고, 직급은 합리적이며, 언행엔 절제가 있어야 한다.